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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백석교회 &amp;gt; 예배와말씀 &amp;gt; 금요기도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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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금요기도회 (2015-02-18 22:09:30)</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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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중보기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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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4pt;color:rgb(120,32,185);">중보기도  (백석교회 이승남목사)</span></b></p><p><b><span style="font-size:14pt;color:rgb(120,32,185);">행12:1-19</span></b></p><p><br /></p><p>오늘 제목은 “중보기도”입니다. ‘중보 기도라는 말은 사람이 쓸 수 없다!’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기 때문에 사람이 ‘중보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보다 성경적 표현인 ‘도고’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도고라는 말은 어렵고 중보라는 말은 쉬운가 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중보기도라 하면, 남을 위해서 하는 기도라는 의미입니다.</p><p><br /></p><p>2~5절 - 교회 입장에서는 엄청난 위기가 온 것입니다. 수제자, 지도자인 베드로가 잡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 사도 중 한명은 순교했습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베드로도 죽임당할 위기에 있으니, 교회가 기도합니다. 성경에 보니깐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말하자면, 중보기도를 한 것입니다. 6절 - 얼마나 성경이 정확합니까. 베드로가 죽임당하기 전날 밤에 이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주의 사자를 보내사 베드로를 구원하신 줄 믿습니다. 성경은 “전날 밤”이라 말합니다. 한국교회 역사를 보니까, 일본 사람들은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성도들을 감옥에 넣고 결의하길, 1945년 8월 16일에 사형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형 전날인 8월 15일에 당신의 백성들을 해방시켜 주셨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세밀히 이 자리, 이 예배의 자리에 함께 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평범한 삶속에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나아가는 성도가 좋은 성도입니다. 다윗은‘우리의 앉고 서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라 고백합니다. 예수님도‘날아가는 새를 보라 먹이시지 않느냐? 들의 백합화를 보라 입히시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심장이 뛴다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은혜 베푸신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걷는 것, 그 자체가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의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입니다. 우리가 몸은 앉아있지만 하나님은 무슨 마음으로 예배드리는지 다 아십니다. 기도할 때도 믿고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다 알고</p><p><br /></p><p>계십니다. 그래서 올해 우리 교회가 첫 번째로 받아야 할 복이 ‘믿음의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복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p><p><br /></p><p>전날 밤에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를 보내셨는데, 이때 베드로는 자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베드로도 자신이 죽을 것을 아는데, 여러분 같으면 자겠습니까.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또 그는 행3장에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을 압니다. 행10장에 고넬료 집에 역사하신 하나님도 압니다. 즉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시며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음을 분명히 알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그가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죽음을 초월한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성령이 계신 사람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7~19절 - 온 교회가 간절히 기도하였고, 이에 하나님께서 주의 사자를 보내심으로 베드로를 깨우시고, 또 옥문이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구원받은 베드로는 성도들이 모인 집 대문을 두드립니다. 로데라는 여자 아이가 와서 누구냐고 물어보고 베드로임을 알게 됩니다. 아이는 너무 충격적이라 안으로 뛰어 들어 갑니다. ‘베드로가 왔습니다.’ 그랬더니 ‘조용히 해라 미쳤니?’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문을 열어보니, 정말로 베드로였습니다. 사람들은 베드로를 구해달라고 자신들이 기도해놓고도 잘 안 믿습니다. 이 간절한 성도의 기도를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주의 사자를</p><p><br /></p><p>보내사 베드로를 구원하신줄 믿습니다. 성경에 보니 남을 위한 중보기도가 많이 있습니다. 중보기도는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기도입니다. 아브라함에겐 조카 롯이 있지요.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정말로 복있는 사람을 따라다니면 복을 받게 됩니다. 나쁜 사람을 따라다니면 공범이 됩니다. 이처럼 누구를 따라 다니느냐가 중요합니다. 롯이 사는 지역은 소돔과 고모라란 지역입니다. 거기는 돈이 많고 풍족했지만, 타락하고 음란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도시를 심판하려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위해 그 도시를 두고 기도합니다. ‘주여, 그 소돔과 고모라 성에, 그 많은 사람 중에 의인 50명이 있어도 죽일 것입니까?’ 하나님이 ‘안하겠다.’ ‘그럼, 의인 10명이 있어도 멸망시키겠습니까?’ 왜 끊임없이 아브라함은 기도합니까? 조카 롯 때문입니다. 결국 이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창19:29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고 말씀하십니다. 롯이 의로워서 건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때문에 하나님께서 롯을 건지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다른 사람이 치료받고 변화되어 하나님 앞에</p><p><br /></p><p>출32장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시내산에 계명을 받으러 올라갔는데 40일이 걸립니다. 백성들은 모세가 안오니 불안했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 감사했던 사람들이 이제 모세가 안온다고 불안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들의 자손들은 갈라지지 않은 요단강을 보고도 믿음으로 건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됩니다. 이들의 신앙은 환경이나 현실을 보고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오직 말씀을 믿고 나아가는 신앙이기 때문에 이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누리게 됩니다. 늘 보고 믿는 사람은 안 보이면 흔들리게 됩니다. 우리는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없으니 불안하여 아론에게 우리를 위해 신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이것이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와주시고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드는 신을 섬기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를 위해 신을 만들어라’ 그러니 아론이 ‘금 있으면 다 내놓아라’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낸 하나님이다’하니 백성들이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눈에 보이니, 기뻐 난리가 난 것입니다</p><p><br /></p><p>그런데 하나님께서 볼 때는 화가 납니다. 모세에게 “내가 다 진멸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p><p><br /></p><p>출32장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모세야 이 놈들 해도해도 너무하구나! 기적을 한 두번 봤느냐? 다 진멸하고 너에게 큰 민족을 주겠다”합니다. 그런데 이때 모세가 중보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진멸하시면 많은 사람들이 보면 애굽에서 구원해놓고는 다 죽였다고 하지 않겠습니까?’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다 들으시고 화를 내리지 않으십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지 아니하시고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p><p><br /></p><p>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민11장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또 원망합니다. 원망, 불평, 불만은 좋지 않은 버릇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할 수 있는데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남의 잘못을 비판하고 판단하지 마세요! 성숙된 그리스도인은 죽은 자를 살리고 위로하고 아픈 사람을 돕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성숙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p><p><br /></p><p>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쉽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살릴 것이냐?’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것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이루어짐을 아시기 바랍니다.</p><p><br /></p><p>나를 통해 사람이 구원받고 치료받는데 쓰임 받고 한다면, 그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백성들이 하도 원망하니 불뱀을 보냈습니다. 불뱀 물린 사람은 다 죽습니다. 모세가 또 기도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됩니까? 놋뱀을 만들어 높이 세우라. 얼마나 모세가 급했겠습니까. 놋뱀을 본 사람은 다 살았습니다. 높이 달린 장대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라 합니다. 죄를 위해 높이 달리신 예수님의 십자가, 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나아서 자녀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구주로 영접하여 자녀가 된 줄 믿습니다.</p><p><br /></p><p>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해 그들이 구원받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줄 믿습니다. 우리를 위한 참된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알고 보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무슨 내용으로 기도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잘못 간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롬8:27“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지금 성령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 응답 해주셔도 감사하고, 기다려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복 주시길 원하시는 분인 줄 알기에 모든 상황이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와 복을 받은 사람인지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계신 사람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서로를 위해 중보하고 예수님이 기도해주시고 성령이 기도해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놀라운 축복의 사람이 되었으니, 어딜 가든지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는 중보기도의 사람입니다. 초대교회는 중보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첫째로는 예수님과 그의 말씀을 실제로 믿는 사람이 중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하실 때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위해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고 모세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합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데 이는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는 기도응답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확실히 기도 응답받을 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를 위해 기도할 것인가? 딤2:1-2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지도자를 위해, 정치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말 두려워함으로… 백성을 위해 나라를 사랑하는 지도자가 되도록… 그중에 더 귀하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른 지도자가 세워져야 우리가 편안히 먹고 살고 선교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복음 전도자를 위해 기도하여야 합니다. 엡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말씀 전하는 자들, 전도자와 설교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병 낫기 위해 중보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야고보는“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 서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나만을 위해 기도하는 자가 아니라 중보 기도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위해 옆 사람을 위해 목회자를 위해 중직자를 위해 선교사를 위해 이 민족을 위해 북한 땅에 복음을 위해서 방황하는 청년들을 위해 더욱 힘써 기도하시고 중보기도 사역에 동참하시고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 행복을 누리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p>]]></description>
<dc:creator>백석교회</dc:creator>
<dc:date>2015-02-18T22:09:30+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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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title>
<link>https://baekseokchurch.kr/bbs/board.php?bo_table=m23&amp;amp;wr_id=1</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4pt;color:rgb(58,50,195);">모든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백석교회 이승남목사)</span></b></p><p><b><span style="font-size:14pt;color:rgb(58,50,195);">디모데전서 2:1~7</span></b></p><p><br /></p><p> </p><p>사도 바울은 그가 떠난 후 에베소 교회에 거짓교사들이 들어와 그가 가르친 교훈과 다른 교훈을 가르침으로써 교회를 혼란스럽게 할 것을 염려하여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 하였습니다(딤전1:3).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을 명했습니다(딤전1:18-19). 바울은 디모데에게 책무를 맡길 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며 완수할 것인지에 대한 권면도 주었습니다. 그 첫 권면은 바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디모데 혼자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고 온 교회가 함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p><p><br /></p><p>먼저 본문 1-2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p><p><br /></p><p>1절에서 사도 바울은 기도할 것을 권하며 곧바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합니다. 에베소의 거짓교사들은 기독교를 엘리뜨 그룹을 위한 종교라고 치켜 올리는 경향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엘리뜨 그룹에만 관심을 기울였을 것임에 반해 바울은 그런 사고를 배격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죽음이었다면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또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p><p><br /></p><p>사도 바울은 기도할 것을 권하며 기도와 관련된 네 가지 단어를 사용합니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입니다. 간구와 감사는 기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도고는 특별히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되 어린 아이가 아버지에 대하여 갖는 것 같은 신뢰로 매달리며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p><p><br /></p><p>2절에서는 특별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합니다. 여기서 “임금들”은 로마의 황제들을 포함해서 모든 왕들을 가리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란 황제의 신하들을 비롯한 모든 통치자들, 고위관리들, 정치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글을 쓸 당시 로마의 황제가 역사상 가장 포악한 기독교박해자 네로였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p><p><br /></p><p>네로 황제같은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라는 것은 다소 놀라운 일일지 모르지만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경건”은 올바른 믿음에 근거한 삶을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사랑과 형제이웃사랑으로 요약되고 대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구원의 소식을 아무 장애 없이 전하기 위해 유리한 전제를 말합니다. 우리 또한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누구를 구원하실 지는 하나님의 주권과 뜻에 맡기더라도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과 전도사역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며 간섭하여주시기를 비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p><p><br /></p><p>이렇게 사도 바울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권고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본문 3-4절을 봅니다: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를 아는” 것은 구원소식의 신빙성을 통찰하는 것이며 그것을 몸소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p><p><br /></p><p>“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말은 참된 진리의 인식은 오직 소수의 사람에게만 있다고 하는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을 명백히 반대하는 것입니다.</p><p><br /></p><p>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은 구원의 문은 유대인에게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자유인이게만 아니라 노예에게도, 남자들에게만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열려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구원의 진리인 복음을 알고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알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는 사람까지 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25:31-33) 하셨습니다. 그리고 왼편에 있는 자들은 영벌에, 오른편에 있는 자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5:46).</p><p><br /></p><p>모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이들만 구원을 받는 것이지만 누가 참으로 구원에로 택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인지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모릅니다. 그 때문에도 누가 구원을 얻을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p><p><br /></p><p>이렇게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자유인이나 노예나,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인종과 국적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믿기만 하면, 그의 구원의 진리를 알고 복음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또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왜 그런 것인지, 그가 누구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답합니다. 본문 5-6절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p><p><br /></p><p>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는 본성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 가장 좋은 이해입니다. 그런데 그의 사명과 사역의 관점에서 말하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시라는 것이 그에 대한 핵심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p><p><br /></p><p>중보자란 무엇입니까? 소통이 끊어졌거나 서로 멀어졌거나 서로 남남같이 되었거나 아니면 서로 전쟁 중에 있는 양쪽을 연결시켜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중보자는 양쪽 모두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선한 의지로 양쪽에 대해 상대방의 대변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p><p><br /></p><p>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십니다. 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필요합니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소통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원수관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짓고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끊어진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 중보자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양쪽을 대변할 중보자이어야 합니다.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이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런 중보자이신 것입니다.</p><p><br /></p><p>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연결역할만 하신 중보자가 아니십니다. 그는 그보다 더 크고 깊은 의미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에게 순종하면 영원히 복된 삶을 누리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첫 언약인데 죄를 짓고 그 언약을 어긴 사람은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영원히 복된 삶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죄 지은 사람들이지만 살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납할 수 없는 당신의 의도 또한 살리셔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며 동시의 하나님의 의를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선택이 당신의 아들을 사람으로 세상에 내려 보내시고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그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한 그의 대속의 죽음을 믿기만 하면 구원과 영생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 언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것입니다. 그것을 히9:15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고 있습니다.</p><p><br /></p><p>“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굳이 명시한 이유는 거짓교사들이 예수님께서 참 사람이심을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참 사람이시라는 것은 그가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시는 데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저 사람이기만 하다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려면 또한 참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십니다. 그래서 그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하신 중보자가 되신 것입니다.</p><p><br /></p><p>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창조주이십니다. 다른 신은 없으며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지 않은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구원은 오직 그의 주권 아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의 화해를 위하여 세우신 유일한 중보자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른 중보자는 없습니다. 다른 화해와 구원의 길도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가 누구를 부르시고 믿음을 주셔서 구원하시든 그것은 오직 은혜일 뿐입니다. 그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누리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은혜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라고, 특히 이방인들에게 나아가 전하라고 부르심과 세우심을 받은 사도입니다. 거짓교사들이 뭐라 해도 그것은 사실이라고 사도 바울은 힘주어 말하기를 잊지 않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사도 바울이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한 것을 교만하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그가 딤후1:11에서 쓰기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한 것처럼 그는 단지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렇게 세우셨다고 고백한 것뿐입니다. 이것은 에베소 교회의 거짓교사들이 사도 바울의 소명과 사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에 대비해 그곳 신자들이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봅니다.</p><p><br /></p><p>오늘날 우리에게도 참된 복음과 바른 신앙의 교훈을 지킬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도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힘써야 할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하되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또 믿든 믿지 않든 이 세상 통치자들이나 관리들을 위해서도 특별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과 선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복음의 전파와 확산이 방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증오와 잔인한 학살과 보복행위의 반복이 그치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신자들의 기도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 모든 국가, 모든 민족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뜻을 그 누구에게서든지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도록 날마다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p>]]></description>
<dc:creator>백석교회</dc:creator>
<dc:date>2015-02-18T21:58:37+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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