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
<rss version="2.0"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channel>
<title>백석교회 &amp;gt; 예배와말씀 &amp;gt; 수요예배설교</title>
<link>https://baekseokchurch.kr/bbs/board.php?bo_table=m22</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수요예배설교 (2015-02-18 21:45:41)</description>

<item>
<title>칭찬 받은 서머나 교회</title>
<link>https://baekseokchurch.kr/bbs/board.php?bo_table=m22&amp;amp;wr_id=3</link>
<description><![CDATA[<p>요한계시록 7 교회중 책망하는 말씀이 있었지만,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만은 책망 없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단지 격려와 권고의 말씀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서머나 교회를 거울 삼아야 하겠습니다.</p><p>교회를 이해하려면 서머나 교회의 시대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p><p>서머나는 대 무역의 도시이었습니다.</p><p>소 아시아 일곱 교회는 현재대로 보면 모두 터키 나라에 속해 있지만, 신약 시대의 배경으로 보면, 예베소항 북방 35마일 지점의 깊은 만(灣)위에 위치한 좋은 항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머나는 헤르무스(Hermus)강 유역을 관통하는 교통의 요새였습니다. 당시 모든 교역 품은 서머나 시장으로 들어왔고, 또한 서머나 항구를 통하여 나갔습니다. 서머나는 특히 포도주의 집산지였습니다. 현재도 보면 도로변 양편에 넓은 들이 모두 포도원들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머나는 부유한 상업 도시였습니다.</p><p>서머나는 극히 아름다운 도시이었습니다.</p><p>서머나는 ‘아시아의 영광’이라는 별명을 들었습니다. 주전 4세기에 이미 도시 계획에 의하여 건립된 도시계획의 표본이었습니다. 모든 시가지는 사통오달로 뻗어 있었고, 가장 유명한 거리는 ‘황금의 거리’라고 불렸습니다.</p><p>서머나는 유명한 경기장과 잘 알려진 도서관이 있었고, 소아시아 최대의 공중극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머나의 가장 유명한 기념물중 하나는 호머(Homer)의 기념비입니다. 호머의 출생지이기도 합니다.</p><p>서머나는 씨빌(cybele)신전을 위시하여 아폴로, 아스클레피오스, 아프로디테, 제우스 등의 신전이 있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p><p>서머나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도시이었습니다.</p><p>서머나는 소아시아의 모든 도시중 도시행정상 자랑스러운 도시였습니다.</p><p>서머나는 아름다움에 있어서 첫째 가는 도시로 자처했고, 로마 황제 숭배에 있어서도 굴지의 도시로 자부했습니다.</p><p>서머나는 모든 내란에서 언제나 바른 편을 택했고 로마 편에 섰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인들은 서머나에게 감사하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부유한 도시 속에서 가난한 기독교인들을 보는 눈이 얼마나 비천하게 보였겠습니까.</p><p>요즘도 서울 장안에서도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교회 나오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어떠할까, 바로 그런 시선으로 업신여겼을 것입니다.</p><p>서머나인들에게는 지상의 영광이 ‘처음과 나중’이었지, 하나님이 ‘처음과 나중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 세워진 교회가 서머나 교회입니다.</p><p>4. 그런데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p><p>서머나 교회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p><p>①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유한 자니라” 고....</p><p>②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 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고.....</p><p>③ “마귀가 장차 너희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 가 10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고....</p><p>④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그리고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고....</p><p>주님은 서머나 교회가 당하는 &lt;환난&gt;(tribulation)과 궁핍(poverty)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좀 설명 드려야 하겠습니다.</p><p>서머나 교인들을 항상 위협했던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p><p>하나는 로마황제 숭배의 강요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도시 안에 있는 유대인의 밀고와 박해이었습니다.</p><p>대 영토를 정복한 로마의 난제는 어떻게 하면 그 광대한 식민지를 통일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잡다한 민족과 인종들, 그리고 많은 영토의 도시와 국가들을 한 곳으로 통일시킬 수 있을까? 를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로마의 황제를 신격화시키는 일이었습니다.</p><p>마치 지금 북한 공산집단들이 김일성을 우상화시켜, ?주체사상?으로 전 북한 주민을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유일사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당시 로마의 통치자들은 황제를 신(神)이라고 하여 그를 숭배하여 그 형상 앞에 절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언제나 독재자들이 하는 바로 그러한 수단이었습니다.</p><p>이것이 &lt;로마의 정신&gt;이었습니다.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속주(屬主)들은 로마의 강력한 군대 덕분에 바다의 해적들과 들끓던 산적들이 소탕되어 도리어 사업을 순조롭게 할 수 있게 되었고, 가족을 평안하게 부양할 수 있게 되어 평화를 누리게 되어 소위 &lt;팩스 로마나&gt; 를 누리게 되었습니다.</p><p>처음에는 이 숭배가 자연 발생적으로 주로 동방에 국한되어 일어났지만, 그러나 점점 확대되어 &lt;로마 정신&gt;은 구체화되기 시작하면서 인물화 되어 곧 황제는 신이라고 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발적 행위에서 시작 되었던 것이 1세기 말엽 &lt;도미시안&gt; 황제 때 최종 조치가 취해서 강제적으로 의무화시켰습니다. 모든 로마 시민은 일년에 한번씩 로마 황제의 신전 앞에 한웅큼의 향을 피워야 했습니다. 이렇게 분향을 마친 시민에게는 종교적 의무를 시행했다는 증명서를 발급하였고 이 증명서를 모든 서류에 부착토록 하였습니다. 이 증명서를 받은 사람은 그후 어떤 다른 종교의 신을 믿어도 상관하지 아니했습니다. 단지 로마에 대한 충성심을 테스트하는 데 있었습니다.</p><p>이것이 바로 초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아야 했던 원인중 하나이었습니다.</p><p>이 황제 숭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온갖 사회적 불이익을 당해야 했고, 직장에서 떨려나야했고,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내가 네 환난을 안다”고 하였습니다.</p><p>그 뿐만 아니라, 다른 또하나의 환난은 유대인들의 밀고(密告)였습니다.</p><p>유대인들은 두고 두고 기독교인들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교회를 말살하는 일이라면 어떤 짓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이 해야하는 일이란 한 줌의 향을 피우면서 “황제는 주이시다”라고 말하는 것이 전부이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이것을 거부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로 이것을 관가에 밀고했습니다. 같은 동족이면서도 마치 왜정 시대에 헌병의 밀정이 되어 숫한 애국지사들을 밀고했던 것처럼, 바로 유대인들의 박해가 그런 것이었습니다.</p><p>초대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신 앞에서도 &lt;주&gt;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핍박을 받은 것은 자기들과 같이 생활하지 않는다는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p><p>기독교인들은 비타협적으로 황제 숭배의 형식을 이행하려고 하지 아니하였고, 따라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었고, 소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p><p>이러한 환난 속에서도 서머나 교회는 주님께 향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죽도록 충성하라고 위로와 격려를 하고 있습ㄴ다.</p><p>우리는 이 말을 평안한 자리에서 읽고, 각 교회마다 임직식을 할 때, 패에다 이 구절을 적어 읽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당시의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이 당한 환난을 상기하면서 그 말씀을 읽고 있느냐? 입니다.</p><p>어떤 사람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당시에 어디서나 불법자가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겠다는 각오의 결단이기도 하였습니다.</p><p>오늘날 이러한 각오로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도리어 기독교인이 되어야 웃사람의 눈에 들어 진급이 빠르고, 교회에 나간다고 해야 교제하는 여자와 또는 남자와 결혼할 수 있겠기에 나오는 경우들은 없지 않은지......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p><p>후일 서머나 교회의 감독인 폴리갑(Polycarp)의 순교의 일화는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울려 줍니다.</p><p>이때도 주모자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p><p>그날은 축제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중들은 모두 들떠 있었으며 흥분하기 쉬운 분위기였습니다. 기독교의 감독 폴리갑을 잡으라는 함성이 높아졌습니다.</p><p>그는 도피할 수 있었지만 체포되었습니다.</p><p>그리고 가이사의 신상에 숭배하던지 아니면 죽으라는 양자 택일이 강요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폭도들의 고함 소리를 이렇게 유도했습니다.</p><p>“이자는 아시아의 선생이요, 기독교도의 아비이며, 신들의 파괴자다. 이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황제 예배도 분향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자이다. 이제 분향을 하든지 죽음을 택하든지 하도록 하자”고......</p><p>그가 86세의 고령인 고로 단 한마디 말로만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놓아주겠다고 했습니다.</p><p>이 때, 그는 불후의 대답을 이렇게 남겼습니다.</p><p>“내 나이 팔십육년 동안 그리스도를 섬겨 왔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나에게 한번도 잘못한 적이 없으셨습니다. 어찌 내가 나를 구원해주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p><p>그날은 안식일었다고 하였습니다.</p><p>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일하지 않는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금식하며 걷지도 않는 저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화형에 쓸 나무를 모으는데 열심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안식을 범하고 있었습니다.</p><p>이것을 지켜보는 폴리갑은 “괜찮아, 나는 한동안 타다가 잠시후면 꺼지고 말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왜 지체하느냐? 자! 와서 너희 뜻대로 하려무나” 하고 말했습니다.</p><p>불길이 활활 타오를 때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p><p>“주께 감사하나이다. 주께서는 나를 이날과 이 시간에 합당한 자로 여기셨음이니이다. 그리하여 나는 수 많은 순교자들의 반열에 들게 되고 주 그리스도의 잔에서 분 깃을 얻게 되었나이다”라고.....</p><p>서머나의 기독교인들은 너무나 영웅적 신앙의 투사들이었습니다.</p><p>그러기에 주님도 저들에게 한 마디의 책망할 것이 없었던 줄 압니다.</p><p>서머나는 이교도들의 휘황찬란한 예배가 그리스도교회의 생명력을 질시시킬만한 도시였습니다.</p><p>서머나는 교만한 인간이 오만불손한 멸시의 눈길로 겸비한 기독교인들을 내려다보던 도시였습니다.</p><p>서머나는 가이사 숭배를 요구하는 강압과 유대인의 중상모략과 악의가 기독교인들을 괴롭혔던 도시였습니다. 이런 곳에서 죽도록 충성하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이었습니다.</p><p>사랑하는 성도 여러분!</p><p>오늘의 백석 교회는 어떤 형편에 있습니까?</p><p>오늘 우리가 처해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어떤 도시입니까?</p><p>오늘의 우리들의 신앙을 파괴하는 환난과 궁핍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p><p>오늘 우리들에게 임하시는 주님의 음성은 무엇이라고 느껴집니까?</p><p>우리에게는 로마의 황제 숭배도, 유대인의 밀고도 없습니다.</p><p>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가이사 황제의 우상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p><p>우리 앞에 다가선 우상은 이제 &lt;맘몬&gt;이라는 신입니다.</p><p>돈이란 황제의 우상 앞에서 모두 돈이 &lt;주&gt;라고 고백하고 있지는 않는지?</p><p>교회들도 모두 이 물신 앞에서, 비위를 맞추며, 그것만이 축복이라고 흥청대고 있지는 않는지?</p><p>오늘 서울이란 도시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대형교회의 교인이 되는 것? 우리 교회는 뻐스도 있고, 기도원도 잘 짓고,그리고 목사님들도 훌륭한 분들이고, 파이프 오르간도 있고, 유명한 지휘자들도 있고, 성악 전공자들이 성가대도 하고......그런 교회의 교인 됨을 자랑하는 것이겠습니까?</p><p>오늘의 서울이란 도시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입니다.</p><p>남들처럼, 화려한옷입고,좋은 차로교회에나와훌륭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예배 후에는 좋은 식당에서 가족끼리 식사하고 흩어지는 것이겠습니까?</p><p>오늘의 서울이란 도시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입니다.</p><p>저는 독일의 통일의 주역이 되었던 조그마한 교회, 라이프닛츠의 니콜라이 교회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 교회의 교인들이라야 말로, 주님의 음성을 바로 들었기 때문에 남이 할 수 없었던 일을 감당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백석교회도, 서머나 교회처럼, 책망을 듣지 않았던 교회라는 말을 들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p>]]></description>
<dc:creator>백석교회</dc:creator>
<dc:date>2015-02-18T21:45:41+09:00</dc:date>
</item>


<item>
<title>인내를 온전히 이루라</title>
<link>https://baekseokchurch.kr/bbs/board.php?bo_table=m22&amp;amp;wr_id=2</link>
<description><![CDATA[<p>야고보서를 공동서신(共同書信)이라고 합니다. ?공동서신?이란 문자 그대로 공동적으로 보라는 뜻입니다. 1절에 있는 것 같이 ‘이스라엘의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어느 특정한 교회에 보낸 편지가 아니라, 모든 교회들에게 보내는 서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오늘 우리 교회에게도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p><p><br /></p><p>이 글을 써 보내는 이는 &lt;야고보&gt;라고 했습니다. 신약에는 4명의 야고보가 있지만, 여기서는 대체로 예수님의 동생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라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열두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이 편지가 쓰여지기 전 이미 순교하였으며(행12:2), 또 다른 두 야고보는 이 편지의 저자가 될 만큼 큰 영향력이나 위치를 갖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p><p><br /></p><p>예수님의 동생 중 이 야고보는 제일 나이 많은 동생이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마13:55)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뵌 후 변화되어 초대 교회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행15:13) 이 야고보서는, 믿음의 생활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흔히 바울의 로마서와 이 야고보서를 서로 반대적인 것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입니다. 바울은 구원 얻는 비결에서 &lt;믿음&gt;을 강조한 것이라면, 야고보는 역시 구원 얻는 믿음에서 &lt;행위&gt;를 강조한 것 뿐입니다. 둘이 다 &lt;믿음&gt;을 강조한 점에서 하나란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야고보서에서 가르친 신앙의 행위에서 인내(忍耐)에 관하여 몇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p><p><br /></p><p>1. 먼저 시험은 누구에게나 다 찾아온다는 것입니다.</p><p><br /></p><p>신앙 생활에서 첫번째 닥치는 관문이 이 시험의 관문입니다.</p><p><br /></p><p>시험은 믿음이 큰 사람이건, 믿음이 적은 사람이건, 모두에게 다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시험이 올 때 바르게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마치 갓난 얘기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앓으면서 성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시험이 없기를 바라고 기도하지만, 평안한 가운데서는 신앙의 성장이 없습니다. 성장의 과정에는 반드시 아픔과 고통의 문제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p><p><br /></p><p>식물들도 비바람이 불어와야 뿌리가 더욱 튼튼히 박히고, 바위틈에 들풀도 도리어 단단한 바위 틈새에서 더 억세게 자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보면 시험을 만나거든 두려워하지도 말고, 낙심하지도 말고, 불평하지도 말고, 정면으로 돌파하라고 하였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세상적인 일반 상식으로 보면, 잘 이해가 안가는 말입니다. 시험을 만나거든 기뻐하라니,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보통 시험이 오면 걱정부터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 시험이란 모든 재난과 환난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p><p><br /></p><p>2. 그러므로 시험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옵니다.</p><p><br /></p><p>사람이 한평생 몇 번의 시험으로 끝난다면 좋겠지만, 죽는 날 까지 시험은 계속 될 것입니다. 시험이 닥치기 시작하면 한꺼번에 닥칠 때가 있습니다. ① 돈에 대한 시험 ② 이성에 대한 시험 ③ 명예에 대한 시험 ④ 질병에 대한 시험 ⑤ 자존심에 대한 시험 등등 시험은 다방면으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시험은 실패했을 때만 오는 것이 아니고, 성공했을 때도 찾아옵니다. 시험은 가난한 사람에나, 부자에게나, 권력을 가진 자에게나, 소시민이나 촌부에게나 다 찾아옵니다.</p><p><br /></p><p>예수님도 육신으로 세상에 계셨을 때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경제적 시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영웅적 명예의 시험, 그리고 절하면 일시에 모든 권세를 넘겨주겠다는 종교적 사명의 시험까지 당하신 분이었습니다. 시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도 찾아옵니다. 금식기도 하는 사람에게도 옵니다. 예수님도 40일 금식 기도 마친 후 마귀가 와서 시험했다고 하였습니다. 기도 많이 한다고 시험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기도하는 중에도 시험이 있고, 기도 후에도 시험이 있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도, 받은 후에도 시험은 항상 있다는 말입니다. 천사는 천사만한 마귀가 시험을 하고, 장로와 목사에게는 그만한 마귀가 와서 시험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시험했는데 누구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스스로 섰다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p><p><br /></p><p>3. 그런데 시험을 만나거든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p><p><br /></p><p>여기 시험이라는 말의 원문의 뜻은 &lt;페이라스모스&gt;(πειρασμο?)라는 말인데, 이 말은 본래 ?던져 본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서 ?한번 건드려 본다?는 뜻입니다. 그릇도 깨지냐 안깨지냐를 보려면 한번 던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시험이 올 때 깨질 믿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예를 보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한번 건드려 보았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말입니까! 그래서 모리아 산으로 가는 사흘 길에서 아브라함은 한마디도 말이 없었습니다. 이윽고 아들이 말을 건네었습니다. ‘아버지! 여늬 때는 불과 나무와 제물을 가지고 갖는데 왜 이번에는 제물이 없습니까?’라고 했을 때, 아버지 아브라함의 심정은 찢어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너를 잡아 제물을 드리라고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었습니다.</p><p><br /></p><p>그러나, 그 후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고민과 시련의 순간을 이겨냈습니다. 온전히 시험을 이겨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독자 이삭까지 내게 드렸으니, 이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내가 알겠다’고 하시면서 ‘네 뒤를 돌아보라’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은 제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풀에 뿔이 걸려 있는 수양을 잡아 제물을 드렸습니다.</p><p><br /></p><p>우리에게 닥치는 시험 중에 제일 흔한 시험이 돈의 시험입니다. 사람이 먹고 사는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인줄 압니다. 우리 예수 믿는 가정에서도 시험이 어디로 쫓아옵니까? 경제적 문제들이 제일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시험을 먼저 당한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것이 떡입니다. 빵의 문제들 때문에 시기하고, 원망하고, 도적질하고,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데 까지 나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애굽 과정에서 ?만나의 교훈?을 보여준 하나님입니다.</p><p><br /></p><p>만나는 매일 거두어 들이도록 하였습니다. 안식일은 쉬라고 하였고, 그 대신 전날에 배를 거두게 하였습니다. 이 원리(原理)를 어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결과는 모두 헛수고로 돌아갔습니다. 욕심 많게 이틀 사흘 치를 한꺼번에 거두어 들여도 모두 썩어 버렸고, 냄새가 나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식일 날도 밖으로 나가 주어 보려고 했으나 하나도 얻지 못하고 빈 바구니만 가지도 돌아왔습니다.</p><p><br /></p><p>오늘 이것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 중에 물질의 욕심을 지나치게 내는 사람들이 들어야 할 교훈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보다 떡을 더 많이 긁어 모아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도 돈이 있어야 대접받고, 사람들이 알아주고, 좋아한다고 그렇게만 생각하고 그런 마음으로 굳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 그것이 현실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광야 세상에서는 온통 그것으로 통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하는 성도들이라면, 그렇게 쉽게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매일 열심히 나가 주워담으면 하나님은 굶어서 죽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더 많이, 더 많이, 더 남들보다 많이, 많이 하다 보니, 속이 상하고, 짜증나고, 불안한 것뿐이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도리어 범사의 기쁨일 것입니다.</p><p><br /></p><p>우리에게 쉽게 닥치는 시험은 명예의 시험입니다. 사람이 먹고살만하면, 다음에 오는 시험이 이름을 내려는 유혹의 시험입니다. 노아 홍수 후 인간들의 모습에서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언어가 하나였지만 왜 오늘날 이렇게 잡다한 언어로 분리 되었습니까? 홍수 후 저들의 생각이 어떻게 돌아갔느냐 하면, 다시 홍수가 닥쳐도 살아남으려면 ‘성(城)과 대(臺)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자’고 하였습니다. 돈 없던 사람이 돈을 벌게 되면, 다음은 이름 내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바람을 피우는 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p><p><br /></p><p>시험은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명(使命)완수 보다 당장에 보이는 현실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승리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완수를 위하여는 목숨을 버리는 것 까지도 주저하지 않겠노라고 흔들리지 아니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 자들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이을 자들입니다. ‘에서와 같은 망년된 자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에서는 맏아들의 장자권을 당장 배고픔의 유혹 앞에서 죽 한 그릇과 바꾸어 먹었습니다.</p><p><br /></p><p>신앙 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중도에 세상 팥죽 한 그릇에 팔아 버리는 인생들 많습니다. 저들이 장차 누릴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p><p><br /></p><p>지금 이 세상에서는 장차 누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 얼마나 귀한지를 모르고 있을 뿐,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생각컨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롬8:18)</p><p><br /></p><p>시험을 통한 승리를 내다보면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시험은 결국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다 지켜보시고 있기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조금도 믿음의 부족함이 없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p>]]></description>
<dc:creator>백석교회</dc:creator>
<dc:date>2015-02-18T21:36:34+09:00</dc:date>
</item>


<item>
<title>성령강림주일</title>
<link>https://baekseokchurch.kr/bbs/board.php?bo_table=m22&amp;amp;wr_id=1</link>
<description><![CDATA[<p>오늘(6월 8일 주일)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교회력으로 오늘부터 11월 30일 대강절 前(전) 24번의 주일을 성령강림 후 첫째 주일. 둘째 주일.....등으로 이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몇 주 동안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성령 하나님에 대하여 묵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p><p> </p><p>2. 성령-聖靈-Holy Sprit-루아흐 카도쉬(히브리어)-프뉴마 하기오스(희랍어)?</p><p>The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Holy Spirit” 항목에 의하면, 성령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관련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이 그 일을 위하여 특별히 선택한 어떤 개인에게 부어주시는 강함(strength)-용기(courage)-지혜(wisdom)-지식(knowage) 등 신비한 능력(The mysterious power of God), 어떤 특정한 개인에게 자신을 현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재능 등을 의미합니다.</p><p> </p><p>즉, 구약의 모세, 여호수아 같은 지도자들-삼손, 기드온 같은 사사들-엘리야, 얼리사,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에스겔 등과 같은 에언자들-성막, 성전, 제사에 필요한 器物(기물)을 만드는 재능-성전에서 음악, 찬양, 시 짓는 재능-그리고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바로에게 내린 재앙, 홍해를 가르심, 시내산의 현현-해를 멈추심) 등을 말합니다.</p><p> </p><p>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the work of Christ)을 통하여 일어나는 교회 안의 모든 작용(operation-복음 전파, 교회 공동체, 간증, 순교, 방언, 치유, 기적 등 ), 그리고 성도들이 교회의 머리로써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묵상하는 것 등을 의미합니다.</p><p> </p><p>우리말 聖靈(성령)을 뜻하는 “히브리어 루아흐 카도쉬-희랍어 프뉴마 하기오스”에서 “루아흐(히)-프뉴마(희)”의 원래 의미는 “바람, 폭풍, 숨, 활력,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원래적 의미로 이름 한다면 &lt;인격을 가지신 거룩한 바람&gt;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즉, 성령은 인격을 가지신 분입니다. 성령은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가 말하는 一者(일자-The One)-Cosmic Power(우주적 힘)-Inner Vitality(내적 생명력) 같은 비인격적인 神(신), 어떤 신비한 힘, 초능력이 아닙니다. 이 땅에 발붙이고 살고 있는 우리 사람과 知性-感情-意志(지정의)로 통하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령께서 우리 사람을 위하여 끊임없이 말씀하시고-근심하시고-탄식하시고-도우시고-간구하시는 분(요4:24, 요14:26, 롬8:26, 계2:7)” 이라고 증거 하십니다.</p><p> </p><p>3. 성령 하나님의 가장 크신 役事(역사-Work) 세 가지?</p><p>첫째. 성령께서 성부 하나님 곁에 계시어 천지창조 하신 일입니다..</p><p>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And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up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 of the waters.</p><p> </p><p>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잠8:22-32).</p><p> </p><p>둘째. 성령께서 예수께 임하시어 예수께서 그리스도-메시야 되심입니다.</p><p>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4:18-21). “당신이 그리스도 십니까? 묻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눅7:17-23)에게 예수님은 앞에 언급한 눅4:18-21을 그대로 일러주셨습니다.</p><p> </p><p>셋째. 성령께서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교회를 세우심입니다.</p><p>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47).</p><p> </p><p>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성령 하나님을 묵상하는 중 성령께서 나에게 물으시기를 “이정수 목사야, 너는 신구약성경 가운데 내가 가장 신비하고-놀랍고-사람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큰 일(The Great Work)을 이룬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하시는 물음을 주셨습니다. 그 물음에 대한 나의 깨달음이 천지창조-예수께서 그리스도 되심-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심입니다!</p>]]></description>
<dc:creator>백석교회</dc:creator>
<dc:date>2015-01-08T08:33:54+09:00</dc:date>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