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창세기 27:1-4)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창세기 27:1-4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창세기 27:1-4)
이삭이 나이가 들어 죽을 때가 가까이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죽기 전에 자식을 축복해야지’ 그래서 맏아들에서를 부릅니다. “에서야, 네 아비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다오. 내가 그것을 먹고 힘을 얻어서 너를 마음껏 축복하리라”이 말을 듣고 에서가 전통에 활을 담고 들로 사냥을 하러 나갑니다. 마침 그 얘기를 곁에서 들었던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입니다.
리브가는 평소에 에서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둘째 아들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인간적인 편애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야곱을 사랑하라고 계시했기 때문입니다. 리브가가 야곱을 부릅니다. “야곱아, 네 아버지가 마지막 축복을 할텐데 네가 받아야 한다. 빨리 염소를 잡아서 가지고 오너라 내가 별미를 만들어 네 손에 들릴테니 네가 갖다 드리고 복을 받아라” “어머니, 형은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한 사람인데 축복을 받으러 들어갔다가 이 사실이 탄로 나면 축복은커녕 저주받을까 두렵습니다.” “아니다. 내가 잘 알아서 할 것이니 준비해서 가지고 오너라”
리브가가 양을 잡아서 별미를 만들어 아들 손에 들리기 전에 집안에 있는 에서의 옷 중에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는 양의 새끼의 털로 감추어서 별미를 들고 들어갑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왔습니다.” “벌써 만들어 왔나” “예,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셔서 잡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가까이 와 봐라 음성이 야곱의 음성인데.. 손을 좀 만져보자” 눈이 어두우니까 손을 만지는데 손에 털이 많으니까 “음성은 야곱의 음성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구나!” 하면서 옷의 향취를 맡으면서 “옷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고는 그에게 축복을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28-29절)
이 축복을 받은 이후에 에서가 들에서 사냥을 해서 별미를 만들어서 아버지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아버지, 저를 축복해 주시죠.” “아니 네가 누구냐?” “에서이옵니다.” “조금 전에 축복을 다 끝냈다.” “아버지, 저에게 줄 축복은 없습니까?” “없다. 한 번 축복을 내렸다. 그 이름 야곱 그대로 또 나를 속였구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39-40절). 복도 아닌 복을 에서에게 빌어주었습니다. 저는 야곱이 받은 축복을 모든 성도들이 다 받기를 바랍니다.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1절) 눈이 어둡다는 것은 물론 기력이 쇠해서 시력이 약해졌다는 말도 되지만 영안이 어두워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에서를 축복하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에서를 장자로 예비한 것이 아니라 둘째 아들 야곱을 장자로 예비했습니다. 리브가가 태중에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잉태했는데 둘이 얼마나 싸우는지 태중에서 복통이 일어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를 부둥켜안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아이들이 배 속에서 요동합니까?”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이런 얘기를 리브가가 이삭에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삭은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의 계시를 만홀히 여기고 인간적인 감정으로 맏아들 에서가 들에서 사냥을 해서 종종 짐승의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주니까 그것을 먹고 축복을 하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 말을 들은 리브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 노인이 망령이 들었구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려 하는구나 에서가 맏아들이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은 둘째인 야곱에게 주려고 계시했는데 어찌하여 축복을 에서에게 주려고 하나 에서가 장자의 복을 받으면 이 가문은 망한다. 하나님의 가문이 못된다.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는 망령된 자식에게 어찌 장자의 명분을 줄 수 있단 말인가’ 해서 리브가가 비상수단을 써서 축복을 야곱에게 받도록 했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수단과 방법은 좋은 것이 못되었습니다. 만일 진실로 리브가가 그랬다고 한다면 “여보, 당신이 나이가 들어 영안이 흐린 것 같은데 축복을 에서에게 주면 안되옵니다.” 이렇게 만류를 했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눈 어두운 것을 빌미로 작은 아들이 축복을 받게 한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고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받도록 계획했기 때문입니다. 그 계획을 이룬 것입니다.
들짐승을 잡아서 별미를 만드는 것으로는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행동해야 됩니다. 저들이 축복을 빌어주어도 그 별미가 하늘이 주는 별미를 먹어서 축복을 해야 하는 것이지 들 가운데 있는 짐승을 먹고 축복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별미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고기는 양이었습니다. 이것은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언제나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별미를 받을 때 양으로 받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양을 잡아서 가죽 옷을 입혀서 저들의 허물을 가리웠습니다. 아벨이 양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릴 때 그것을 열납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상에서 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드림으로 이삭을 대신해서 번제로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양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에게 준 별미의 신비의 동물입니다. 왜냐하면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만백성의 죄를 지고 갈 어린양으로 오실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양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별미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위하여 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질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동안 노예생활을 할 때 저들이 탄식하며 학대를 받는 신음속에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어린양을 잡아서 문설주에 피를 발라 하나님의 집으로 표시를 하고 하나님의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 임할 때 어린양의 피가 있는 집은 건너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양의 고기, 별미를 먹고 잔치를 하고 다음날 애굽을 떠나게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이요, 계시였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조상 대대에 하나님의 별미인 양의 식물을 이삭이 만홀히 여겨 들짐승을 먹고 축복하려고 할 때 리브가가 가로막은 것입니다. 아내가 믿음이 있는 것이죠. 훌륭한 것이죠.
하나님께서 별미를 양의 고기로 만들어서 드리게 하고 드디어 그 축복을 야곱이 받아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이렇게 말합니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야곱은 본질적으로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손을 어린양의 가죽으로 덮어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모든 축복은 내 행위나, 내 노력이나, 내 인간됨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덮어서 그 손으로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비한 비밀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것도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로 덮어서 드려야 그 제물이 하늘에 이르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도 나의 인간됨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혜도 어린양 예수의 피로 덮어서 죄사함 받는 것입니다. 이 신비한 은혜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별미에 대한 깊은 뜻을 발견하고 이 은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별미는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여기에서 야곱이 축복을 받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장자라는 것은 인간적인 장자에 대한 얘기가 아닙니다. 야곱이 장자가 되어서 무엇을 받을 것이 있습니까 땅 상속을 야곱은 욕심내지 않습니다. 그러면 야곱이 장자의 상속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 하나님에 대한 장자입니다. 하나님의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는 장자 됨에 대한 의욕입니다. 이것이 야곱이 받아내는 축복의 비밀입니다. 이 복은 신령한 복이며, 가장 큰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이런 면에서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세상의 축복도 받아야 됩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가 받아야 할 축복은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을 크게 받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늘나라에 가면 하나님으로부터 ‘네가 큰 자다’ 이렇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내 믿음이 커야지’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장자의 명분을 내던지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야곱의 축복은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장자의 축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큰 은혜의 사모함입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는 비밀이 있습니다. 어머니를 가까이 모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집에서 어머니 말을 잘 순종했습니다. 자식이 어머니 말씀을 순종하는 자식은 장래가 있습니다. 어머니 말씀을 순종하는 자식이 아버지 말씀에 불순종하겠습니까 어머니 얘기를 통해서 아브라함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습니다. 모리아산상의 얘기를 듣습니다. 아버지 이삭을 기적적으로 할아버지가 백 살에 낳았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우리 가문은 보통 가문이 아니구나!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비록 세상의 능력도, 권세도, 재주도 없지만 하나님이 세운 위대한 분이구나! 그 분의 위대한 신앙을 내가 받아야지’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을 야곱이 어머니를 통해 받습니다. 신령한 의미로 교회는 어머니와 같다고 말합니다.
성자 크리소스톰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면 교회는 어머니와 같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으려고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축복을 부모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식 됨의 도리입니다. 부모가 이 자식을 원망한다든지 자식을 싫어한다든지 그 자식에 대하여 마음에 맺힌 한이 있으면 이미 축복은 없습니다. 야곱은 부모에게 대한 축복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삭의 하나님, 그래서 이삭이 축복하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습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29절) 이것은 ‘너는 어느 곳에 가든지 머리가 되고 다스리는 자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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