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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일 기적의 축복 (신명기9:9-10)

작성자 백석교회 댓글 0건 조회 27회 작성일 25-01-09 20:57

사십일 기적의 축복

신명기9:9-10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돌판의 글은 하나님이 손으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의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 (신명기9:9-10) 

성경에는 거룩한 숫자가 있습니다. 3이 거룩한 숫자입니다. 3은 성부, 성자, 성령을 상징하는 하늘의 숫자입니다. 4는 땅의 숫자입니다.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것으로 3이 하늘의 숫자인데 반해 4는 땅의 숫자입니다. 그리고 7 혹은 12를 거룩한 숫자라고 합니다. 734를 더한 숫자이고, 1234를 곱한 숫자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을 더하고 곱했기 때문에 빈틈이 없는 만수라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410배인 40도 꽉 찬 숫자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40일의 7가지 기적이 있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고 40일간 홍수를 만납니다. 홍수 후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모세는 40일간 금식하고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만난 모세는 얼굴빛이 변화하였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40일의 가나안 정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전을 주었습니다. 다윗은 40일간 골리앗과 전쟁하여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를 이기고도 낙담하여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자청하였지만 다시 일어나 40일간 걸어가서 다시 삶의 회복을 맛봅니다.

요나의 40일의 회개기도는 니느웨가 변화하였습니다.

 

예수님은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며 사역을 준비하였습니다. 그 후에 40일간 부활 후의 증거는 교회 설립의 중요한 사역이 되었습니다. 40일의 축복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40일은 기적의 날입니다. 40일은 더 할 수 없는 만수입니다. 우리의 최선, 최고, 최상을 주님께 드리고 받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40일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40일이 하루같이 은혜와 축복의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명기 9:9에는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라고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40일을 준비하며 금식하였습니다. 성경에 자세히 보니 금식이 아니라 단식이었습니다. 물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식음을 전폐한 40일이었습니다. 모세의 40일은 초인적 기다림이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한 이런 간절함과 열정이 축복입니다. 축복은 준비에서 이미 주어집니다. 잔치를 준비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예배를 준비하며 이미 은혜를 받습니다. 예배는 시작하기 전에 미리 은혜를 받고 시작합니다. 하늘나라는 가기 전에 준비하면 이미 축복과 가치가 있습니다. 모든 일이 준비하며 기다리는 그 자체가 의미이며, 축복이며, 은혜입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신분이 높은 인물일수록 만나기가 힘이 듭니다. 하물며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데 이런 간절함과 기다림이 없이 만날 수 없습니다. 모세가 40일을 준비하며 만난 하나님은 그 이상의 가치를 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인셀은 기다리게 하는 것은 종속의 효과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기다리게 하는 사람의 시간은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보다 가치가 높다고 간주하게 됩니다. 기다리게 하는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을 좌우하는 권한을 갖는 우위의 입장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의 가치는 우리의 시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습니다. 각색 병자들이 한번이라도 예수님을 만나려고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무리들이 둘러싸고 예수님을 보려고 몰려왔습니다.

 

여리고의 삭개오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뽕나무 위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만나기를 고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까지도 예수님을 만나려고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오래 기다린다고 해도 만남의 가치가 있습니다. 11절에는 사십 주 사십 야를 지난 후에라고 합니다. 40일입니까? 40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에 필요한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이 되어야 은총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되어야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40일은 완전한 시간이며 충분한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루에 모든 세상을 못 만드셔서 6일이 걸렸을까요? 하나님은 순식간에 다 만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6일은 하나님께 필요하신 시간입니다.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닙니다.

 

모세의 40일은 하나님을 만나고 마음을 준비하기에 필요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이 아니면 참 만남도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의 광야 생활도 같은 의미입니다. 일주일 혹은 천천히 걸어도 열흘이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40년의 광야생활을 요구하십니다. 만일에 일주일 만에 가나안에 들어갔다면 그 땅을 차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40년이 긴 세월이지만 가나안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육체적인 만남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의 참 만남(encounter)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완벽한 준비를 요합니다.

 신명기 9:10에는 여호와께서 두 돌 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돌 판의 글은 하나님이 손으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의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하여 모세는 40일의 공과 정성을 드립니다. 꾸준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받을 가치가 있고, 받으려고 기다릴 가치가 있고, 받는 축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온 사람들을 보세요. 산상보훈을 말씀하실 때 그 언덕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처음 만나시던 날은 새벽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호숫가에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오천 명을 먹이실 때도 말씀을 들으려고 모인 무리들이었습니다. 산상보훈을 마치실 때에 그 말씀을 들은 무리들이 놀라서 말합니다. “이는 그 가르치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이러라 

(7:29).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와 가치가 무리들이 운집한 이유입니다. 말씀을 받는 것이 축복이며 은혜입니다. 구체적으로 모세는 십계명을 받으려고 40일이 걸렸습니다. 한 계명에 나흘을 투자한 것입니다. 계명 하나에 나흘의 가치가 있습니다. 계명 하나의 가치가 나흘이 문제겠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계명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이상이라도 아깝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이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포시스라는 수도사는 사도들의 참된 계승자는 감독이 아니라 신약성경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사도들이 전하던 말씀을 이제는 성경이 들려줍니다. 그리스도인의 귀에 말씀이 들려진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성경을 읽어도 감동이 없고, 믿어지지 않는다면 저주받은 것입니다.

 

성경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진다는 자체가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받기 위하여 우리가 아무리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앞을 보지 못할뿐더러 듣지 못한다. 듣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훨씬 더 불행한 일이다. 나는 듣지 못하는 것이 보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장애가 된다는 사실 깨달았다”. 듣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장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는 것은 가장 큰 신앙의 장애입니다. 말씀을 받고, 말씀이 들려지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이 귀하던 시절에 성경을 반포한 얘기를 들으면 감동이 됩니다. 성경 한 권을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애타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말씀을 듣기 위하여 갈급한 사람들이 지금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40일을 머물며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모세가 말씀을 받기 위하여 기다렸던 40일이 우리의 기다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40일을 기다려 말씀을 받았던 그 감격과 그 가치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성경을 읽고 묵상하다가 예전에 느끼기 못하던 감동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주의 말씀 받은 그날 참 기쁘고 복되도다. 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40일은 말씀 축복의 날입니다. 모세는 첫 번째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40일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 십계명을 받을 때 다시 40일을 기다렸습니다. 40일은 기도 축복의 날입니다. 엘리야는 다시 힘을 얻기 위하여 40일을 기도하였습니다. 모세는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멸하시겠다고 했을 때에 40일 동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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