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중에 형통의 축복 (시편23:4-6)
환난 중에 형통의 축복
시편23:4-6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23:4-6 )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데 왜 환난이 다가옵니까? 내게 환난이 다가 올 때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인 아닌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시련을 겪게 하실까?. 이런 질문들이 수없이 들면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환난과 시련은 괴로운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환난을 통하여 더욱 큰 형통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다윗이 우리에게 계시로써 보여준 환난중의 형통은 어떤 것인지 한번 알아 봐야 되겠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 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왜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녀야 할까요? 우리의 생활 속에 크고 작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우리는 통하게 됩니다. 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해야 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불순종이나 불신앙의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불순종하거나 불신앙하고 또 하나님의 일에 반역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부모가 자식을 징계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영의 아버지께서 어찌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보시고도 징계하지 않고 내버려두겠습니까. 징계를 안 하면 그는 참 아버지도 아니요. 징계를 받지 아니하면 사생자지 참 아들이 아닌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 자녀로 받아주신 이상 우리에게 징계하십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완전한 인간이 못되기 때문에 불순종과 불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반역할 때 하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통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깨어지고 회개하고 자복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난과 시련의 풍파를 당했을 때 먼저 해야 될 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자복하는 일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환난과 고난의 풍파가 다가오면 그때 엎드려서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그 죄를 다 고백하고 자백하고 씻고 올바른 길로 돌아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젖과 꿀이 흐르는 곳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살게 될 때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과 사신을 섬기고 하나님께 반격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통하게 했습니다. 북방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고 남방 유다는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민족적인 수난을 겪고 그들은 그곳에서 정결하게 되고 깨어져서 나중에 고향 땅에 되돌아 왔을 때는 우상과 사신을 버리고 야웨 하나님을 섬기는 정결한 신앙인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를 정결케 하고 순종하고 신실한 믿음을 가진 신자를 만들기 위해서 크고 작은 환난과 시험을 겪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환난과 시험은 마귀의 영을 통해서 다가오기도 합니다. 마귀가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마귀가 우리의 약점을 바라보고 마귀가 총 공세를 가해서 우리에게 환난과 시험을 가져다 줄 때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보면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마귀가 가져온 시험과 환난도 그때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신앙을 버리면 마귀에게 파멸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고 더 기도하고 더 찬미하고 더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인내하면 마귀는 물러가게 됩니다. 성도에게 환난과 시험이 다가오는 것은 더욱 깨어지고 겸손하게하기 위함입니다
.신명기 8장 14절에서 16절을 보면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 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 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 할 때 우리를 깨뜨려서 복을 받을만한 그릇을 준비하려고 할 때 시험과 환난을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릇이 준비 안 되었는데 하나님이 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 그릇을 크게 하고 정결케 하려고 하니까 우리를 불을 통하고 물을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불을 통하고 물을 통할 때 우리의 찌꺼기가 정하게 되고 그릇이 커지고 그래서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과 환난을 통하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들을 낮추시고 시험에서 마침내 저들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격을 주기 때문에 시험과 환난을 당 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성경에는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건강이 좋은 사람은 무슨 음식이든지 잘 먹고 편식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면 이를 받아들여서 소화해 버리고 감사하고 나가면 시험과 환난은 우리의 영양분이 되지 우리에게 해독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험과 환난을 받아 가지고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발버둥을 치면 이것은 우리에게 영양분도 되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무기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것은 원수에게 당하는 시험과 환난 때인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원수가 우리를 시험하고 우리를 공격하면 원수만 바라보고 원수의 사나운 눈을 바라보고 원수의 사나운 손톱과 발톱을 보고 우리는 그 만 아우성을 치고 절망합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원수의 목전에 잔치 상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원수는 우리가 망하기를 바라고 온갖 도적질하고 죽이고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원수 앞 에서 우리에게 형통과 흥하는 잔치 상을 베풀어서 원수가 오면 올수록 우리는 더 살찌고 더 부흥하고 더 발전하는 것입니다.
원수는 우리가 죽기를 원하나 하나님께서는 그 기회를 이용해서 오히려 우리를 살리게 하고 더 강성하게 하여 잔치 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히려 원수가 죽이거든 먹이고 목마르면 마시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원수를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원수가 올 때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원수를 저주하지 말고 복 빌어줄 것은 원수를 통해서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를 축복의 기회로 삼아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죽음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형통하게 하십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나의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 령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웨 집에 영원히 거하리라. 사람은 여러분 한번 낳아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나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불신자에게는 죽음은 인생의 끝을 의미합니다. 모든 삶의 종결이요. 그러므로 죽음은 긍극적인 공포요, 슬픔이요, 절망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죽음이 우리에게 굉장한 형통의 세계를 열어 주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절망인데 우리는 죽음이 소망이요 안 믿는 사람은 죽음이 끝인데 우리는 죽음이 시작이요, 안 믿는 사람은 멸망인데 우리는 영광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에서 24절에 바울이 말하기를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들과 같이 있으면 내가 너희들에게 전도도 하고 너희들에게 위로하기 때문에 너희들은 유익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차라리 몸을 떠나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8절에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몸을 떠나면 사라질 줄 알지만 우리가 육신의 장막 집을 떠나면 그 다음에 곧장 주 예수와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 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제는 쫓겨 나가지 아니하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4장 1절에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한은 밧모 섬에 유배를 당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를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장차 들어가 살 곳을 하나님이 미리 요한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에서 7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바다는 순종하는 인생의 환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환난이 없는 그런 세계인 것입니다. 오늘 그래서 시편 기자 다윗을 통해서 보면 우리는 환난 날에 형통하게 하는 하나님을 보고 환난을 오히려 즐겁게 느낄 수 있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잃어버리거나 원망하거나 불평을 하면 환난은 우리를 파멸합니다. 그러나 환난 때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은 환난을 통하여 오히려 더 큰 형통을 가지고 오신다는 것을 알고 믿고 감사드리고 기도하며 회개하며 연단을 받으며 깨어지며 인내하고 더욱 순종하면 환난은 오히려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크나큰 영광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서 18절을 보면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 함이니라" 환난의 지극히 작은 것이 영광의 지극히 중한 것을 이룬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이 환난 당한 것을 돌아보고 오히려 크게 기쁘게 여기시고 만족하게 여기신다고 성경에는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환난은 잠시 당하나 환난 이후에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는 복은 영원하고도 영광스럽고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환난이 오히려 변해서 우리에게 크나큰 영광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게 된 것을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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