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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9)

작성자 백석교회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5-01-09 18:10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오늘 성경말씀에는 화평케 하는 자 는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화 평'이 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엔 '에이레네' 이고 히브리말로는 '샬롬' 입니다. 샬롬이라고 하는 이 개념은 히브리 적인 사상이며 또 성경이 말씀하는 평화의 기본 개념입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요 그 다음에는 나 자신의 문제입니다. 영적 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화 평, 그 다음에 내 속에 있는 영적 상태 거기에 진정한 평화,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의 평화, 그 다음에 이것이 그 결과로 이어지면 서 이웃과의 관계, 가정과의 관계, 경제와의 관계, 심지어는 정치적인 문제까지 정치적인 번영까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정의, 자유, 평등, 번영 모든 것을 다 합쳐서 그런데 뿌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 고 '내 영적인 상태' 이러한 화평을 샬롬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이 시대는 이 화평을 실현하기 위해서 힘쓰고 수고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1331-3절에는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형제가 연합한다는 것은 12지파가 하나 됨을 의미하는 말씀일 것입니다. 이 화평이 마치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을 타고 내려와서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과 같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름과 이슬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들입니다. 즉 화합하고 화평한 것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강조하여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갈등의 시대입니다. 정치적 갈등 노사 관에 갈등 가정에 갈등 지역 관에 갈등 그 가운데 가장 큰 갈등은 하나님과의 갈등입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장 가슴 아파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까지 보내 제물로 보내셨는데, 이 관계가 정상화 되어서 누구도 멸망치 않길 바라셨는데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갈등은 내안의 갈등과 불화입니다. 내 안에는 많은 욕망, 욕구, 탐욕이, 시기, 질투가 들어 있습니다. 이것들이 내 자아와 싸우게 하고 갈등하게 만들고 실망하게 하고 삶을 포기하게도 만듭니다. 그리고 이웃 간의 갈등도 있습니다. 내 집의 자녀간, 부부간, 부모간, 형제간의 갈등도 심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교회의 갈등도 심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의 갈등도 심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구심점이 없습니다. 국론과 의견이 갈가리 찢겨져 저마다 주장만 하고 서로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품격을 상실하고 서로가 막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 같은 갈등 속에서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키에르 케고르는 인간은 불화한 존재이고 불안해하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피곤하고 지치고 목마른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쉼은 모든 속박, 번뇌로부터 벗어난 참 자유와 평화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쉼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어디에도 이런 평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평화가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평화를 맛보려면 평화의 하나님께로 나아가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 평화는 평화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재하실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27절에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평화가 진정한 평화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평화를 얻는 길을 제시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10:34) 화평 대신 검을 주러 왔다는 말은 역설입니다. 주제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평화로 가는 전 단계로서 검을 말씀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참 평화를 얻으려면 먼저 평화의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영접하는 신앙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불교인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평생 유교에서 살다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심각한 자기와의 싸움, 영적싸움을 해야만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들어올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습니까? 너무도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복음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싸움, 즉 검으로 자기를 찢고 찌르는 아픔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심각하게 영적인 싸움을 거치고 나서 비로소 예수를 영접하고 은혜를 체험하여 얻은 것이 바로 여기서 말씀하는 화평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화평을 가져오는 사람을 화해자(reconciler)라고 하며 화평하게 하는 자를 피스 메이커(peace maker)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복이 있는 사람은 이 화평을 가져오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불화를 일삼는 사람도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언짢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조화를 깨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 프란시스의 평화의 기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 있는 곳에 믿음을, 오류 있는 곳에 진리를, 어둠 있는 곳에 빛을, 슬픔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 이해하고, 사랑 받기보다 사랑하게 하소서.”

 

이 세상에서 이 평화가 제일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먼저 평화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네 안에 평화를 조성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평화를 이루는 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의 갈등이나 불화는 나의 삶과 생명을 좀 먹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듭니다. 삶의 맛을 잃게 하고 잠을 빼앗고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가는 곳 마다 절대로 화평을 깨뜨려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화평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1218절에 보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 화하라."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평화를 도모할 것이요. 히브리 1214절에는 '모 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 화하라.' "화평함과 거룩함으로.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 라." 예수님께서 오 신 목적이 화평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도 화평입니다. 참 화평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오늘 도 우리가 아주 진실하게 화평케 하 는 자의 거룩한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을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됨의 또 다른 차원의 놀라운 행복을, 또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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