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5:10)
산상 팔복 가운데 "복이 있나니"하는 말씀이 두 번 반복되는 곳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에게 뿐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에게는 갑절의 복이 부여됩니다. 여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말은 의롭게 살기 위해 고통을 받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하여 핍박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신 후 곧 이어 "나를 인하여 핍박을 받을 때 복이 있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면 여러 가지 핍박이 따릅니다. 크리스찬이기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불이익과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또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가족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핍박을 받을 때 오히려 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담대히 주님을 믿고 복음을 전하는 생활을 하라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격려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팔복 말씀 중 마지막 말씀입니다. 10절에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시며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11-12절에서는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고 하시며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10절에서는 일반적인 교훈을 주신 것과 달리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나"라고 1인칭으로, 당신의 말씀을 듣고 있던 무리를 "너희"라고 2인칭으로 말씀하심으로써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떨 때 복 있는 것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과 주님으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는 것이 사실상 같은 것으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셨음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그의 은혜를 의지하여 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진리와 은혜가 의의 근본임을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증언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따라 살며 그의 은혜 안에서 살려고 하는 것 때문에 욕을 먹고 박해를 받으며 거짓되게 악한 말을 들을 때는 오히려 복이 있는 줄로 알라는 것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의 구체적인 뜻인 것입니다. 주의 진리로 주의 은혜 안에 살려고 하는데 왜 상은 주어지지 않고 욕과 박해와 중상모략을 당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의 상급보다 하늘에서의 상급을 바라보며 사는 주의 제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상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천국에서 받을 상이 없는 사람이라면 결코 복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에 이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논리적으로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일은 언제 어디서나 좋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반드시 성공하는 일도 아니며, 또 화평케 하는 사람이 늘 칭찬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화평케 하려다가 따돌림을 당하고 욕을 먹을 뿐 아니라 미움의 대상이 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화평케 하라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며 예수님 자신이 화평을 이루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화평의 주님께서 명하신 일이라면 그것이 바로 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데 이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선 박해를 피하려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표지이며 우리가 진정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 있는 사람에 관한 여덟 가지 말씀 중에서 이 마지막 말씀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셨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앞서는 일곱 가지 말씀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할 것임이요"라는 3인칭 형식으로 끝맺으신 것과 달리 유독 이 마지막 말씀을 하신 뒤에는 곧 덧붙여 2인칭 형식으로 바꾸어 보다 길게 말씀하시기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바로 지키며 살려고 할 때에 반드시 적대나 질시나 미움이나 중상모략이나 박해를 받게 될 것임을 미리 알게 하시고 이에 대비하게 하시고자 하신 뜻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반기독교적 적대감이 증가할 때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 끝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눅6:26의 말씀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세상에서 칭찬받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의 몫이며, 박해받는 것이 참 선지자들의 몫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이 누릴 복이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는 말씀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언급하신 복 있는 사람인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누릴 복이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는 것이었는데 마지막으로 언급하신 복 있는 사람이 누릴 복도 마찬가지로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 있는 사람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이 세상에서 복을 누리는 일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천국백성이 되는 일에 관한 말씀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나라백성의 마지막 표지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오히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이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 메시아왕국을 세상적이고 정치적인 것으로 착각했던 유대인들에게 영적인 의미의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권세를 잡고 남을 지배하며 행세를 하고 때로는 박해하기도 하는 그런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를 행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예수님같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복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그렇게 살고자 하면 미움과 고난과 박해가 따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악하고 예수님 자신도 이 세상에서는 미움과 고난과 박해를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라."(요15:18-20) 이렇게 볼 때 의를 위하여 미움과 고난과 박해를 받는 것은 예수님의 참 제자 됨의 대표적인 표지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두었던 것 같습니다. 요한은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일3:13) 했고, 베드로는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19-21) 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쓰기를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벧전3:14)라 하고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벧전3:17) 합니다. 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2-16) 합니다. 사도 바울도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3:12) 했으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1:29) 했습니다.
백석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고 의롭게 살려고 할 때 닥치는 박해를 피하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을 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십니까? 본문 12절에서 보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정말 세상의 보통 생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박해를 받는 것을 어떻게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또 하나의 특징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실 복 있는 사람들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들은 모두 그리스도인을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하는 특징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으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특징 중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본문 10절에서 보는 대로 "천국이 그런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11절에서 보듯이 주님께서 "나로 말미암아" 라고 말씀하신 대로 그것은 "주님 때문에" 그런 것이기에 영광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12절에서 보는 대로 "하늘에서 상이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역시 12절에서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하신 말씀 같이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옛 선지자들과 같은 반열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도들도 사람들이 그들을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였을 때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다"고 사도행전은 기록하고 있습니다(행5:40-41). 그러므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우리가 선지자와 사도의 반열 가운데에 서있게 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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