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사이버교회

정직하게 행하는 자 (시편84:1-12)

작성자 백석교회 댓글 0건 조회 55회 작성일 25-01-12 18:37

정직하게 행하는 자

(시편84:1-12) 이승남목사 218

 

정직이란 사람이나 사람의 성품, 마음이 바르고 곧은 마음을 말합니다

 

미국의 정치가이며,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남이 나를 정직한 사람이라고 불러주는 성격을 죽을 때까지 유지하고 싶다. 나는 정직한 사람이라는 말을 다른 어떤 칭호보다 더 귀하게 생각한다"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14:2)“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28:10“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받느니라

 

(23:16)“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14:11)”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15:8)“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12:5)“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

 

(15:19)“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11:7)“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미국과 캐나다에서 역사학자들 719명이 모여서 미국의 역대 대통령 41명을 여러 각도에서 평가한 일이 있습니다. 지도력, 업적, 위기관리 능력, 정치력, 인사관리의 5개 분야를 검토해서 평가를 했는데 순위를 정해보니 가장 덕망이 높고 지지율이 높은 1위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리고 꼴찌는 29대 워렌 하딩 대통령이었습니다. 이렇게 학자들이 평가한 것에는 중요한 관점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대통령의 용기와 능력과 지혜는 정직성과 정비례한다는 것입니다. 국가지도자의 정직이 필요한 때입니다 선거을 앞두고 허언공약 살펴보와야 한다 대통령 국무위원 공무원 검찰 경찰 기업주 세무관 정직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정직하다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일반적인 정직이 있고, 법적 정직이 있으며. 양심적인 정직이 있어야 합니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도덕적인 정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양심을 보고 계십니다 (딤전1:19)“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딤전 3:9)“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26:2)“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7:9)“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23:1)“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9:1)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그 다음 성경적인 정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도덕성이 살아 있고, 법이 살아 있고, 믿음이 살아 있는 것에서 하나님이 기대하는 정직자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 모두가 정직자의 가치를 발견하고 정직자의 모습이 회복되어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정직한 왕입니다. 그런데 그 정직을 잃어버렸습니다.그가 범죄 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큰 죄를 지었습니다. 자기 신하의 부인을 왕권으로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님 앞에, 신하들 앞에, 국가 앞에 큰 범죄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간음을 감추기 위해서 신하를 속이고, 군대를 속이고, 나라를 속이고, 역사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면서 죄를 감추었습니다


(삼하12:1-10)”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남편 되는 우리아를 고의로 전장에 보내어 죽게 했습니다.


 (삼하 12:9)”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다윗은 간음을 감추기 위해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살인도 감쪽같이 감추었습니다. 다윗은 남자가 죽자 그 여자를 왕궁으로 불러들여 첩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만사태평했습니다.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왕국은 아무도 손댈 수 없는 만세 반석에 세워진 왕국입니다. 그렇게 감쪽같이 간음, 살인을 저지른 다윗은 여전히 등등하게 살아있는 왕이었습니다. 성경은 그 결론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하 12장에 여호와 보시기에 다윗의 소위가 악하였더라.” 다윗의 행위가 사람도 속이고, 양심도 속이고, 부하도 속이고 다 속였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에게 있었던 범죄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런 죄를 짓고 감추고 있었을 때 그 고통을 오늘 성경에서 말합니다. 3절에 보면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토설은 속에 있는 것을 다 뱉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죄를 감추고 살 때 뼈가 녹았다’ ‘뼈가 쇠하였다고 표현합니다. 4절에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이것은 피가 마르는 고통을 표현했습니다. 내 진액이 여름 가물에 마름과 같다. 즉 뼈가 녹고 피가 마르는 고통을 다윗을 느꼈다고 합니다. 죄를 감춘 다윗의 심령이 이렇게 처절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시편 3110절에도 내 생명은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뼈는 탄식으로 보내며 내 기력이 나의 죄악으로 약하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다윗은 양심의 몸부림을 칩니다. 영혼의 부르짖음을 가집니다. 생명의 처절한 전투를 하면서 그는 죄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회개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죄를 감춘자의 고통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죄를 감추어 놓고 사는 형태입니다. 가족 모르는 죄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친구가 모르는 죄가 있습니다. 교회가 모르는 죄가 있습니다. 교회 앞에 드러나지 않는 숨은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죄는 우리의 뼈를 녹게 하고 피를 마르게 합니다. 이 죄가 우리를 부정직하게 합니다. 이 죄가 우리를 멸망으로 끌고 갑니다. 죄는 주인을 찾아냅니다. 죄는 저절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인간이 죄를 짓는 행동을 함으로서 죄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죄는 주인을 찾아갑니다. 주인이 죄를 부정해도 죄가 주인을 찾아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 죄를 감추고 고통을 하면서 내가 뼈가 녹아나고 피가 마르고 밤마다 눈물로 내 요를 적신다고 고통을 호소합니다.

 

 

다윗은 회개합니다. 그가 나단 선지자 앞에서 자기의 죄를 회개합니다. “내가 이르되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다윗은 큰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함으로써 죄 사함을 입었습니다. 그는 여호와 앞에 회개기도를 이렇게 했습니다. 시편 5110절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옵소서.” 다윗은 정직을 부르짖었습니다. 정직의 회복을 갈망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부정직함을 거두시고 내 안의 부정직함을 소멸하시고 여호와의 정직의 영으로 나를 회복시켜 달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정직의 회복을 부르짖고 있는 다윗의 기도는 매우 실제적입니다


회개한 다윗에게 찾아온 은총은 6절에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라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깨우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정직을 회복하고 나니 주님을 만나는 기회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능력을 회복했습니다. 하늘의 평강을 회복했습니다. 홍수가 범람해도 안전합니다. 여호와의 품에 안겨 여호와를 방패로, 여호와를 피난처로, 구원의 주로 그는 안전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준 정직의 싸움은 오늘 우리들에게 큰 교훈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삶이라는 것은 부정직과 정직의 투쟁입니다. 하나님은 네 정직을 세상에서 인정받으라는 것입니다.


 “정직을 인정받으라.” 하나님은 이것을 요구합니다. 오늘 우리는 정직하다는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대답할 수 있는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습니까?” “예수님의 피로 여러분의 죄가 사함 받은 것을 믿습니까?” “성령의 거듭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습니까?” “우리는 기쁠 때 감사하고 범죄할 때 하나님께 회개합니까?”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주안에서 정직을 가진 자입니다.


 정직이라는 개념은 구원이라는 개념과 통합니다. 다윗이 정직한 영을 회복해 달라고 부르짖는 것은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해 달라고 다음 구절이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정직의 회복이 구원의 회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정직을 회복한 자요,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가 정직한 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잘못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소금, , 향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금으로 존재하라고만 하지 않습니다.


 소금의 역할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금이 소금 창고에 쌓여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소금은 인간의 일상생활 속에서 녹아져야 합니다. 성도들은 창고 안에 있는 소금이 아닙니다. 그릇에 담겨 있는 소금이 되지 말고 뿌려지는 소금이 되시기 바랍니다. 정직함이 인정될 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정직하다고 인정해 줄 때 그 사람이 내 정직으로 인하여 감동을 받았고, 변화를 받았고,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정을 받으면 우리를 인정하는 그 사람들이 변합니다. 우리는 다윗에게 정직의 아름다운 모범을 배워야 합니다


다윗은 신구약 성경에 800번이나 이름이 나옵니다. 그만큼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다윗의 위대성은 회개한 이후에 나타납니다. 다윗은 당당한 왕, 성공한 왕입니다. 이스라엘 왕국을 일으킨 왕입니다. 그런데 그가 간음을 저지르고 살인을 저지른 이후 고통하다가 선지자를 만나 회개했습니다. 회개한 이후 다윗왕국에 중대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아버지를 대항하여 왕궁에서 아버지를 몰아내는 반역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다윗은 아들에게 쫓겨 기드론 시내를 맨발로 건넜다고 성경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군사력과 용맹에 있어서 압살롬을 능가합니다. 대항하여 전쟁을 하면 능히 압살롬을 이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을 대항하지 않습니다. 압살롬을 개인적으로 상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쫓겨 왕궁을 떠나 감람산을 향하여 피난길에 오릅니다. 피난길에 한 불량배가 나타났습니다. 그 이름은 시므이입니다. 시므이가 왕을 향하여 돌을 던지고 티끌을 날리면서 저주를 합니다. 그 광경을 보았던 신하들이 폐하, 허락하옵소서 내가 단칼에 목을 치리이다.” 있을 수 없는 장면이 벌어졌습니다. 아무리 왕이 간음, 살인을 저지른 왕이라 할지라도 도망가는 왕을 향하여 그렇게 저주하는 백성이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누가 저를 정죄하겠는가? 하나님이 저를 향하여 나를 저주하라 함이니 누가 막을 수 있느냐?” 여러분, 신하들 보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저 사람이 저주하라 하는데 누가 막을 수 있느냐?”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과 시므이의 저주 앞에서 개인적으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다윗이 회개한 죄가 무엇입니까? 간음, 살인죄입니다. 압살롬과 시므이를 바로 대항하면 회개했던 살인죄를 또 저지르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런 방법으로 그 문제를 풀지 않습니다. 그는 그것을 다 받아들입니다. 내가 죽을죄를 지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저런 아들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벌을 주신다고 받아들입니다. 불량배가 나를 저주하는 것은 내가 백성들을 속이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나는 저 저주를 받아들일 죄인이라고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자기에게 부딪혀오는 고통들이 죄 값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회개를 깊이 해도 그런 지경이 되면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과거에 죄 지은 것도 다 잊어버리고, 날 공격하는 상대방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직을 회복한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공격하는 그들 앞에서 다윗은 자신을 돌아봅니다. 1년 전에 범죄 했던 자기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봅니다. 이것이 정직의 인정입니다. 다윗은 정직의 인정을 우리 앞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들에게 정직의 인정을 요구합니다. 정직하게 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현실에 있어서 불가능하다고 체념해 버리는 사람은 정직하게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는 이 성경 안에 있는 수많은 명령을 복종하는 자에게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은혜를 허락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은 무리하게 믿음으로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자에게 믿음으로 살아지는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충성하는 자에게 임하는 은혜입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32:7)“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32)” 1, 2절에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14:11)“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33:4)“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 (23:16)”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욥기 33:3)“내 마음의 정직함이 곧 내 말이며 내 입술이 아는 바가 진실을 말하느니라”(15:8)“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21:2)“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51: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설교문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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