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본문말씀 : 디모데전서 2:1~7    설교자 : 이승남목사    설교일자 : 2015-02-13    작성일 2015-02-18 21:58

모든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백석교회 이승남목사)

디모데전서 2:1~7


 

사도 바울은 그가 떠난 후 에베소 교회에 거짓교사들이 들어와 그가 가르친 교훈과 다른 교훈을 가르침으로써 교회를 혼란스럽게 할 것을 염려하여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 하였습니다(딤전1:3).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을 명했습니다(딤전1:18-19). 바울은 디모데에게 책무를 맡길 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며 완수할 것인지에 대한 권면도 주었습니다. 그 첫 권면은 바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디모데 혼자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고 온 교회가 함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본문 1-2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1절에서 사도 바울은 기도할 것을 권하며 곧바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합니다. 에베소의 거짓교사들은 기독교를 엘리뜨 그룹을 위한 종교라고 치켜 올리는 경향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엘리뜨 그룹에만 관심을 기울였을 것임에 반해 바울은 그런 사고를 배격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죽음이었다면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또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할 것을 권하며 기도와 관련된 네 가지 단어를 사용합니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입니다. 간구와 감사는 기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도고는 특별히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되 어린 아이가 아버지에 대하여 갖는 것 같은 신뢰로 매달리며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2절에서는 특별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합니다. 여기서 “임금들”은 로마의 황제들을 포함해서 모든 왕들을 가리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란 황제의 신하들을 비롯한 모든 통치자들, 고위관리들, 정치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글을 쓸 당시 로마의 황제가 역사상 가장 포악한 기독교박해자 네로였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네로 황제같은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라는 것은 다소 놀라운 일일지 모르지만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경건”은 올바른 믿음에 근거한 삶을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사랑과 형제이웃사랑으로 요약되고 대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구원의 소식을 아무 장애 없이 전하기 위해 유리한 전제를 말합니다. 우리 또한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누구를 구원하실 지는 하나님의 주권과 뜻에 맡기더라도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과 전도사역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며 간섭하여주시기를 비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권고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본문 3-4절을 봅니다: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를 아는” 것은 구원소식의 신빙성을 통찰하는 것이며 그것을 몸소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말은 참된 진리의 인식은 오직 소수의 사람에게만 있다고 하는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을 명백히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은 구원의 문은 유대인에게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자유인이게만 아니라 노예에게도, 남자들에게만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열려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구원의 진리인 복음을 알고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알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는 사람까지 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25:31-33) 하셨습니다. 그리고 왼편에 있는 자들은 영벌에, 오른편에 있는 자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5:46).


모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이들만 구원을 받는 것이지만 누가 참으로 구원에로 택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인지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모릅니다. 그 때문에도 누가 구원을 얻을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자유인이나 노예나,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인종과 국적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믿기만 하면, 그의 구원의 진리를 알고 복음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또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왜 그런 것인지, 그가 누구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답합니다. 본문 5-6절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는 본성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 가장 좋은 이해입니다. 그런데 그의 사명과 사역의 관점에서 말하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시라는 것이 그에 대한 핵심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보자란 무엇입니까? 소통이 끊어졌거나 서로 멀어졌거나 서로 남남같이 되었거나 아니면 서로 전쟁 중에 있는 양쪽을 연결시켜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중보자는 양쪽 모두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선한 의지로 양쪽에 대해 상대방의 대변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십니다. 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필요합니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소통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원수관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짓고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끊어진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 중보자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양쪽을 대변할 중보자이어야 합니다.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이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런 중보자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연결역할만 하신 중보자가 아니십니다. 그는 그보다 더 크고 깊은 의미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에게 순종하면 영원히 복된 삶을 누리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첫 언약인데 죄를 짓고 그 언약을 어긴 사람은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영원히 복된 삶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죄 지은 사람들이지만 살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납할 수 없는 당신의 의도 또한 살리셔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며 동시의 하나님의 의를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선택이 당신의 아들을 사람으로 세상에 내려 보내시고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그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한 그의 대속의 죽음을 믿기만 하면 구원과 영생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 언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것입니다. 그것을 히9:15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굳이 명시한 이유는 거짓교사들이 예수님께서 참 사람이심을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참 사람이시라는 것은 그가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시는 데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저 사람이기만 하다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려면 또한 참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십니다. 그래서 그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하신 중보자가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창조주이십니다. 다른 신은 없으며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지 않은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구원은 오직 그의 주권 아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의 화해를 위하여 세우신 유일한 중보자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른 중보자는 없습니다. 다른 화해와 구원의 길도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가 누구를 부르시고 믿음을 주셔서 구원하시든 그것은 오직 은혜일 뿐입니다. 그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누리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은혜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라고, 특히 이방인들에게 나아가 전하라고 부르심과 세우심을 받은 사도입니다. 거짓교사들이 뭐라 해도 그것은 사실이라고 사도 바울은 힘주어 말하기를 잊지 않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사도 바울이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한 것을 교만하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그가 딤후1:11에서 쓰기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한 것처럼 그는 단지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렇게 세우셨다고 고백한 것뿐입니다. 이것은 에베소 교회의 거짓교사들이 사도 바울의 소명과 사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에 대비해 그곳 신자들이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참된 복음과 바른 신앙의 교훈을 지킬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도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힘써야 할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하되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또 믿든 믿지 않든 이 세상 통치자들이나 관리들을 위해서도 특별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과 선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복음의 전파와 확산이 방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증오와 잔인한 학살과 보복행위의 반복이 그치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신자들의 기도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 모든 국가, 모든 민족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뜻을 그 누구에게서든지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도록 날마다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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