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설교

칭찬 받은 서머나 교회

본문말씀 : 요한계시록 2:8-11    설교자 : 이승남목사    설교일자 : 2015-02-11    작성일 2015-02-18 21:45

요한계시록 7 교회중 책망하는 말씀이 있었지만,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만은 책망 없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단지 격려와 권고의 말씀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서머나 교회를 거울 삼아야 하겠습니다.

교회를 이해하려면 서머나 교회의 시대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서머나는 대 무역의 도시이었습니다.

소 아시아 일곱 교회는 현재대로 보면 모두 터키 나라에 속해 있지만, 신약 시대의 배경으로 보면, 예베소항 북방 35마일 지점의 깊은 만(灣)위에 위치한 좋은 항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머나는 헤르무스(Hermus)강 유역을 관통하는 교통의 요새였습니다. 당시 모든 교역 품은 서머나 시장으로 들어왔고, 또한 서머나 항구를 통하여 나갔습니다. 서머나는 특히 포도주의 집산지였습니다. 현재도 보면 도로변 양편에 넓은 들이 모두 포도원들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머나는 부유한 상업 도시였습니다.

서머나는 극히 아름다운 도시이었습니다.

서머나는 ‘아시아의 영광’이라는 별명을 들었습니다. 주전 4세기에 이미 도시 계획에 의하여 건립된 도시계획의 표본이었습니다. 모든 시가지는 사통오달로 뻗어 있었고, 가장 유명한 거리는 ‘황금의 거리’라고 불렸습니다.

서머나는 유명한 경기장과 잘 알려진 도서관이 있었고, 소아시아 최대의 공중극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머나의 가장 유명한 기념물중 하나는 호머(Homer)의 기념비입니다. 호머의 출생지이기도 합니다.

서머나는 씨빌(cybele)신전을 위시하여 아폴로, 아스클레피오스, 아프로디테, 제우스 등의 신전이 있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서머나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도시이었습니다.

서머나는 소아시아의 모든 도시중 도시행정상 자랑스러운 도시였습니다.

서머나는 아름다움에 있어서 첫째 가는 도시로 자처했고, 로마 황제 숭배에 있어서도 굴지의 도시로 자부했습니다.

서머나는 모든 내란에서 언제나 바른 편을 택했고 로마 편에 섰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인들은 서머나에게 감사하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부유한 도시 속에서 가난한 기독교인들을 보는 눈이 얼마나 비천하게 보였겠습니까.

요즘도 서울 장안에서도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교회 나오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어떠할까, 바로 그런 시선으로 업신여겼을 것입니다.

서머나인들에게는 지상의 영광이 ‘처음과 나중’이었지, 하나님이 ‘처음과 나중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 세워진 교회가 서머나 교회입니다.

4. 그런데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서머나 교회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①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유한 자니라” 고....

②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 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고.....

③ “마귀가 장차 너희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 가 10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고....

④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그리고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고....

주님은 서머나 교회가 당하는 <환난>(tribulation)과 궁핍(poverty)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좀 설명 드려야 하겠습니다.

서머나 교인들을 항상 위협했던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로마황제 숭배의 강요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도시 안에 있는 유대인의 밀고와 박해이었습니다.

대 영토를 정복한 로마의 난제는 어떻게 하면 그 광대한 식민지를 통일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잡다한 민족과 인종들, 그리고 많은 영토의 도시와 국가들을 한 곳으로 통일시킬 수 있을까? 를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로마의 황제를 신격화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마치 지금 북한 공산집단들이 김일성을 우상화시켜, ?주체사상?으로 전 북한 주민을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유일사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당시 로마의 통치자들은 황제를 신(神)이라고 하여 그를 숭배하여 그 형상 앞에 절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언제나 독재자들이 하는 바로 그러한 수단이었습니다.

이것이 <로마의 정신>이었습니다.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속주(屬主)들은 로마의 강력한 군대 덕분에 바다의 해적들과 들끓던 산적들이 소탕되어 도리어 사업을 순조롭게 할 수 있게 되었고, 가족을 평안하게 부양할 수 있게 되어 평화를 누리게 되어 소위 <팩스 로마나> 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숭배가 자연 발생적으로 주로 동방에 국한되어 일어났지만, 그러나 점점 확대되어 <로마 정신>은 구체화되기 시작하면서 인물화 되어 곧 황제는 신이라고 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발적 행위에서 시작 되었던 것이 1세기 말엽 <도미시안> 황제 때 최종 조치가 취해서 강제적으로 의무화시켰습니다. 모든 로마 시민은 일년에 한번씩 로마 황제의 신전 앞에 한웅큼의 향을 피워야 했습니다. 이렇게 분향을 마친 시민에게는 종교적 의무를 시행했다는 증명서를 발급하였고 이 증명서를 모든 서류에 부착토록 하였습니다. 이 증명서를 받은 사람은 그후 어떤 다른 종교의 신을 믿어도 상관하지 아니했습니다. 단지 로마에 대한 충성심을 테스트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아야 했던 원인중 하나이었습니다.

이 황제 숭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온갖 사회적 불이익을 당해야 했고, 직장에서 떨려나야했고,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내가 네 환난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다른 또하나의 환난은 유대인들의 밀고(密告)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두고 두고 기독교인들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교회를 말살하는 일이라면 어떤 짓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이 해야하는 일이란 한 줌의 향을 피우면서 “황제는 주이시다”라고 말하는 것이 전부이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이것을 거부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로 이것을 관가에 밀고했습니다. 같은 동족이면서도 마치 왜정 시대에 헌병의 밀정이 되어 숫한 애국지사들을 밀고했던 것처럼, 바로 유대인들의 박해가 그런 것이었습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신 앞에서도 <주>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핍박을 받은 것은 자기들과 같이 생활하지 않는다는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비타협적으로 황제 숭배의 형식을 이행하려고 하지 아니하였고, 따라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었고, 소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환난 속에서도 서머나 교회는 주님께 향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죽도록 충성하라고 위로와 격려를 하고 있습ㄴ다.

우리는 이 말을 평안한 자리에서 읽고, 각 교회마다 임직식을 할 때, 패에다 이 구절을 적어 읽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당시의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이 당한 환난을 상기하면서 그 말씀을 읽고 있느냐? 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당시에 어디서나 불법자가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겠다는 각오의 결단이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각오로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도리어 기독교인이 되어야 웃사람의 눈에 들어 진급이 빠르고, 교회에 나간다고 해야 교제하는 여자와 또는 남자와 결혼할 수 있겠기에 나오는 경우들은 없지 않은지......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후일 서머나 교회의 감독인 폴리갑(Polycarp)의 순교의 일화는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울려 줍니다.

이때도 주모자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날은 축제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중들은 모두 들떠 있었으며 흥분하기 쉬운 분위기였습니다. 기독교의 감독 폴리갑을 잡으라는 함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는 도피할 수 있었지만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이사의 신상에 숭배하던지 아니면 죽으라는 양자 택일이 강요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폭도들의 고함 소리를 이렇게 유도했습니다.

“이자는 아시아의 선생이요, 기독교도의 아비이며, 신들의 파괴자다. 이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황제 예배도 분향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자이다. 이제 분향을 하든지 죽음을 택하든지 하도록 하자”고......

그가 86세의 고령인 고로 단 한마디 말로만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놓아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때, 그는 불후의 대답을 이렇게 남겼습니다.

“내 나이 팔십육년 동안 그리스도를 섬겨 왔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나에게 한번도 잘못한 적이 없으셨습니다. 어찌 내가 나를 구원해주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그날은 안식일었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일하지 않는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금식하며 걷지도 않는 저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화형에 쓸 나무를 모으는데 열심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안식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는 폴리갑은 “괜찮아, 나는 한동안 타다가 잠시후면 꺼지고 말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왜 지체하느냐? 자! 와서 너희 뜻대로 하려무나” 하고 말했습니다.

불길이 활활 타오를 때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께 감사하나이다. 주께서는 나를 이날과 이 시간에 합당한 자로 여기셨음이니이다. 그리하여 나는 수 많은 순교자들의 반열에 들게 되고 주 그리스도의 잔에서 분 깃을 얻게 되었나이다”라고.....

서머나의 기독교인들은 너무나 영웅적 신앙의 투사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도 저들에게 한 마디의 책망할 것이 없었던 줄 압니다.

서머나는 이교도들의 휘황찬란한 예배가 그리스도교회의 생명력을 질시시킬만한 도시였습니다.

서머나는 교만한 인간이 오만불손한 멸시의 눈길로 겸비한 기독교인들을 내려다보던 도시였습니다.

서머나는 가이사 숭배를 요구하는 강압과 유대인의 중상모략과 악의가 기독교인들을 괴롭혔던 도시였습니다. 이런 곳에서 죽도록 충성하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백석 교회는 어떤 형편에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처해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어떤 도시입니까?

오늘의 우리들의 신앙을 파괴하는 환난과 궁핍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오늘 우리들에게 임하시는 주님의 음성은 무엇이라고 느껴집니까?

우리에게는 로마의 황제 숭배도, 유대인의 밀고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가이사 황제의 우상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리 앞에 다가선 우상은 이제 <맘몬>이라는 신입니다.

돈이란 황제의 우상 앞에서 모두 돈이 <주>라고 고백하고 있지는 않는지?

교회들도 모두 이 물신 앞에서, 비위를 맞추며, 그것만이 축복이라고 흥청대고 있지는 않는지?

오늘 서울이란 도시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대형교회의 교인이 되는 것? 우리 교회는 뻐스도 있고, 기도원도 잘 짓고,그리고 목사님들도 훌륭한 분들이고, 파이프 오르간도 있고, 유명한 지휘자들도 있고, 성악 전공자들이 성가대도 하고......그런 교회의 교인 됨을 자랑하는 것이겠습니까?

오늘의 서울이란 도시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입니다.

남들처럼, 화려한옷입고,좋은 차로교회에나와훌륭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예배 후에는 좋은 식당에서 가족끼리 식사하고 흩어지는 것이겠습니까?

오늘의 서울이란 도시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입니다.

저는 독일의 통일의 주역이 되었던 조그마한 교회, 라이프닛츠의 니콜라이 교회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 교회의 교인들이라야 말로, 주님의 음성을 바로 들었기 때문에 남이 할 수 없었던 일을 감당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백석교회도, 서머나 교회처럼, 책망을 듣지 않았던 교회라는 말을 들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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