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설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본문말씀 : 약 1:2-4    설교자 : 이승남목사    설교일자 : 2015-02-18    작성일 2015-02-18 21:36

야고보서를 공동서신(共同書信)이라고 합니다. ?공동서신?이란 문자 그대로 공동적으로 보라는 뜻입니다. 1절에 있는 것 같이 ‘이스라엘의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어느 특정한 교회에 보낸 편지가 아니라, 모든 교회들에게 보내는 서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오늘 우리 교회에게도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글을 써 보내는 이는 <야고보>라고 했습니다. 신약에는 4명의 야고보가 있지만, 여기서는 대체로 예수님의 동생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라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열두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이 편지가 쓰여지기 전 이미 순교하였으며(행12:2), 또 다른 두 야고보는 이 편지의 저자가 될 만큼 큰 영향력이나 위치를 갖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동생 중 이 야고보는 제일 나이 많은 동생이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마13:55)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뵌 후 변화되어 초대 교회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행15:13) 이 야고보서는, 믿음의 생활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흔히 바울의 로마서와 이 야고보서를 서로 반대적인 것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입니다. 바울은 구원 얻는 비결에서 <믿음>을 강조한 것이라면, 야고보는 역시 구원 얻는 믿음에서 <행위>를 강조한 것 뿐입니다. 둘이 다 <믿음>을 강조한 점에서 하나란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야고보서에서 가르친 신앙의 행위에서 인내(忍耐)에 관하여 몇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1. 먼저 시험은 누구에게나 다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에서 첫번째 닥치는 관문이 이 시험의 관문입니다.


시험은 믿음이 큰 사람이건, 믿음이 적은 사람이건, 모두에게 다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시험이 올 때 바르게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마치 갓난 얘기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앓으면서 성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시험이 없기를 바라고 기도하지만, 평안한 가운데서는 신앙의 성장이 없습니다. 성장의 과정에는 반드시 아픔과 고통의 문제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식물들도 비바람이 불어와야 뿌리가 더욱 튼튼히 박히고, 바위틈에 들풀도 도리어 단단한 바위 틈새에서 더 억세게 자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보면 시험을 만나거든 두려워하지도 말고, 낙심하지도 말고, 불평하지도 말고, 정면으로 돌파하라고 하였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세상적인 일반 상식으로 보면, 잘 이해가 안가는 말입니다. 시험을 만나거든 기뻐하라니,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보통 시험이 오면 걱정부터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 시험이란 모든 재난과 환난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2. 그러므로 시험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옵니다.


사람이 한평생 몇 번의 시험으로 끝난다면 좋겠지만, 죽는 날 까지 시험은 계속 될 것입니다. 시험이 닥치기 시작하면 한꺼번에 닥칠 때가 있습니다. ① 돈에 대한 시험 ② 이성에 대한 시험 ③ 명예에 대한 시험 ④ 질병에 대한 시험 ⑤ 자존심에 대한 시험 등등 시험은 다방면으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시험은 실패했을 때만 오는 것이 아니고, 성공했을 때도 찾아옵니다. 시험은 가난한 사람에나, 부자에게나, 권력을 가진 자에게나, 소시민이나 촌부에게나 다 찾아옵니다.


예수님도 육신으로 세상에 계셨을 때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경제적 시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영웅적 명예의 시험, 그리고 절하면 일시에 모든 권세를 넘겨주겠다는 종교적 사명의 시험까지 당하신 분이었습니다. 시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도 찾아옵니다. 금식기도 하는 사람에게도 옵니다. 예수님도 40일 금식 기도 마친 후 마귀가 와서 시험했다고 하였습니다. 기도 많이 한다고 시험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기도하는 중에도 시험이 있고, 기도 후에도 시험이 있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도, 받은 후에도 시험은 항상 있다는 말입니다. 천사는 천사만한 마귀가 시험을 하고, 장로와 목사에게는 그만한 마귀가 와서 시험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시험했는데 누구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스스로 섰다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3. 그런데 시험을 만나거든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시험이라는 말의 원문의 뜻은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ο?)라는 말인데, 이 말은 본래 ?던져 본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서 ?한번 건드려 본다?는 뜻입니다. 그릇도 깨지냐 안깨지냐를 보려면 한번 던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시험이 올 때 깨질 믿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예를 보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한번 건드려 보았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말입니까! 그래서 모리아 산으로 가는 사흘 길에서 아브라함은 한마디도 말이 없었습니다. 이윽고 아들이 말을 건네었습니다. ‘아버지! 여늬 때는 불과 나무와 제물을 가지고 갖는데 왜 이번에는 제물이 없습니까?’라고 했을 때, 아버지 아브라함의 심정은 찢어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너를 잡아 제물을 드리라고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고민과 시련의 순간을 이겨냈습니다. 온전히 시험을 이겨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독자 이삭까지 내게 드렸으니, 이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내가 알겠다’고 하시면서 ‘네 뒤를 돌아보라’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은 제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풀에 뿔이 걸려 있는 수양을 잡아 제물을 드렸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시험 중에 제일 흔한 시험이 돈의 시험입니다. 사람이 먹고 사는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인줄 압니다. 우리 예수 믿는 가정에서도 시험이 어디로 쫓아옵니까? 경제적 문제들이 제일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시험을 먼저 당한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것이 떡입니다. 빵의 문제들 때문에 시기하고, 원망하고, 도적질하고,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데 까지 나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애굽 과정에서 ?만나의 교훈?을 보여준 하나님입니다.


만나는 매일 거두어 들이도록 하였습니다. 안식일은 쉬라고 하였고, 그 대신 전날에 배를 거두게 하였습니다. 이 원리(原理)를 어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결과는 모두 헛수고로 돌아갔습니다. 욕심 많게 이틀 사흘 치를 한꺼번에 거두어 들여도 모두 썩어 버렸고, 냄새가 나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식일 날도 밖으로 나가 주어 보려고 했으나 하나도 얻지 못하고 빈 바구니만 가지도 돌아왔습니다.


오늘 이것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 중에 물질의 욕심을 지나치게 내는 사람들이 들어야 할 교훈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보다 떡을 더 많이 긁어 모아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도 돈이 있어야 대접받고, 사람들이 알아주고, 좋아한다고 그렇게만 생각하고 그런 마음으로 굳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 그것이 현실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광야 세상에서는 온통 그것으로 통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하는 성도들이라면, 그렇게 쉽게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매일 열심히 나가 주워담으면 하나님은 굶어서 죽게 하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더 많이, 더 많이, 더 남들보다 많이, 많이 하다 보니, 속이 상하고, 짜증나고, 불안한 것뿐이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도리어 범사의 기쁨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쉽게 닥치는 시험은 명예의 시험입니다. 사람이 먹고살만하면, 다음에 오는 시험이 이름을 내려는 유혹의 시험입니다. 노아 홍수 후 인간들의 모습에서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언어가 하나였지만 왜 오늘날 이렇게 잡다한 언어로 분리 되었습니까? 홍수 후 저들의 생각이 어떻게 돌아갔느냐 하면, 다시 홍수가 닥쳐도 살아남으려면 ‘성(城)과 대(臺)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자’고 하였습니다. 돈 없던 사람이 돈을 벌게 되면, 다음은 이름 내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바람을 피우는 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시험은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명(使命)완수 보다 당장에 보이는 현실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승리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완수를 위하여는 목숨을 버리는 것 까지도 주저하지 않겠노라고 흔들리지 아니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 자들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이을 자들입니다. ‘에서와 같은 망년된 자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에서는 맏아들의 장자권을 당장 배고픔의 유혹 앞에서 죽 한 그릇과 바꾸어 먹었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중도에 세상 팥죽 한 그릇에 팔아 버리는 인생들 많습니다. 저들이 장차 누릴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는 장차 누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 얼마나 귀한지를 모르고 있을 뿐,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생각컨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롬8:18)


시험을 통한 승리를 내다보면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시험은 결국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다 지켜보시고 있기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조금도 믿음의 부족함이 없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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