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12-14 http://www.koreacts.com
오늘 본문 12절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서신을 보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이 시간적으로 세 가지의 차원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과거적 의미의 구원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칭의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현재적 의미의 구원이 있습니다. 이는 의롭다 하심을 얻은 후에,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미 받은 구원을 자신의 삶에 실제로 드러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성화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미래적 의미의 구원이 있습니다. 이는 천국에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땅에서는 우리의 구원이 계속 진행되지만, 천국에서는 우리의 구원이 완성됩니다. 미래적 의미의 구원을 다른 말로는 영화라고 합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칭의의 단계는 지났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들의 구원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 그들은 영화롭게 되어 그들의 구원을 완성할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 빌립보 성도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빌1:1 말씀처럼, 빌립보 교회에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집사들과 감독들도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탄탄한 조직을 갖출 정도로 많이 성장했습니다. 또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을 위하여 많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쇠사슬에 매여 있는 것을 알고서, 많은 물질과 함께 에바브로디도를 바울에게 보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개선할 점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계속해서 이루어야 할 현재적 의미의 구원이 있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다툼과 허영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빌4:2 말씀처럼,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여자 사이의 갈등이 심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한마음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당시의 빌립보 교회가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야 할 그들의 구원이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야 할 우리의 구원은 무엇인가를 깨닫고, 성도여러분 모두도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각자의 구원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그들의 구원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에게 복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겸손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께 복종해야만 했습니다. 요일2:6 말씀입니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예수님이 겸손하게 행하신 대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도 겸손하게 행해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께 복종하신 대로, 그들도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바울은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하면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다정하게 불렀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다툼과 허영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이 그들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늘 넘어집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은 다시금 사랑으로 우리를 일으켜 주십니다.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큰 위로가 넘칩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 12절 중반부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바울의 권면은 먼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칭찬하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있을 때,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말씀을 보면, 바울이 전한 말씀을 따라서 루디아와 그의 집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또한 빌립보의 간수와 그의 온 가족도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바울은 그들과 멀리 떨어진 로마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쇠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럴지라도 바울은 그가 가르치며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이 변함없이 항상 복종하기를 당부했습니다. 빌1:27에서 이미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와 같은 말씀으로 권면했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빌립보 교회는 많이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다툼과 허영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따라, 그들이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있을 때, 그들은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그가 없을 때에도, 그들이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그들의 구원을 이루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어떤 자세로, 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들의 구원을 이루어야 했습니까?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대로, “두렵고 떨림으로” 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그들의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만일 그들이 서로 물고 먹으면, 그들은 피차 멸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어짐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늘 두렵고 떨림으로 그들의 구원, 곧 그들의 하나 됨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은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으로 끝맺음을 합니다. 이는 현재 명령형입니다. 계속해서 그들의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날 그들은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는 그들이 계속해서 성화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빌3:12 말씀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이렇듯 바울은 그 자신도 계속해서 그의 구원을 이루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가 자고해서 섰다고 생각하다가는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길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뿐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기도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대로, 오직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만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야 할 우리의 구원은 무엇입니까? 물론 교회적으로는 우리가 늘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면,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어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우리의 구원을 하나씩 이루기를 바랍니다. 교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우리 모두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헬라어 성경에는, 오늘 본문 13절에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가 나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그들의 구원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으십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필히 그들의 구원을 이룰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은 이와 같이 시작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헬라어 성경은 “하나님”이 맨 앞에 나와 강조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안에서 행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그들의 구원을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끼리 협력하여 그들의 구원을 이루도록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천사에게 그들을 돕도록 지시하시는 것으로 끝내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몸소 친히 행하십니다. 그것도 하나님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안에서 행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들 안에서 행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확실하게 그들의 구원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안에서 행하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13절 중반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그들의 구원을 이루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자녀가 서로 다투면, 부모의 마음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하나 되어 화목할 때, 부모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가 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기쁘신 뜻입니다. 오늘 본문 13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하나님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안에서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먼저 하나님은 그들에게 소원을 두십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 소원을 행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먼저 소원을 두심으로 시작합니다. 마음에 소원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뒤에는 행동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안에 행하시며,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그들에게 먼저 소원을 두십니다. 고후8:1∼2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들은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러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에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소원을 두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먼저 성도들의 마음에 소원을 두심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안에서 행하시며,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먼저 그들에게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르고자 하는 소원을 두실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그 소원을 행하게 하시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아무리 옳은 일에 대한 소원이 있어도 그 일을 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먼저 소원을 두시고, 그런 다음에는 실제로 그 소원을 행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 13절에는 “행하다”라는 동사가 사용되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이 때 “행하다”의 주어는 하나님이십니다.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 때 “행하다”의 주어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안에서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소원을 두시며. 다음에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그들에게 두신 올바른 소원을 실제로 행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찔림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그들 안에서 행하시며,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그들에게 하나 됨의 소원을 두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두신 소원을 행하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본을 따라, 그들은 겸손하게 행하며 또한 하나님께 복종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 되어 그들의 구원을 이룰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원망과 시비를 그쳐야 했습니다. 빌2: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빌립보 교회는 하나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다툼과 허영이 있었습니다. 다툼과 허영이 있는 곳에는 원망과 시비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그들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원망과 시비를 그쳐야 했습니다. 원망은 못마땅하게 여기며 불평하는 것입니다. 시비는 따지고 들면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해야 했습니다. 원망과 시비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약5:9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하나님은 원망하는 말을 다 들으시고, 원망하는 자를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그 좋은 실례가 광야에서 원망하며 시비하다가 멸망한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광야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가는 도중 그들은 목이 마르다고, 먹을 것이 없다고, 길이 험하다고 계속해서 원망하며 모세에게 시비했습니다. 고전10:10 말씀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과 시비를 일삼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렵고 떨림의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께 복종하여 원망과 시비를 그치며 그들의 구원을 이루어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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