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양을 찾으라
잃은 양을 찾으라
눅15:1-7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신 분명한 목적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께서 많은 세리와 죄인을 영접하여 함께 식사를 나누셨을 때 이를 제일 못마땅해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깨끗하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죄인 중의 대표적인 죄인인 세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세리는 로마 정부가 고용한 유대인으로 조국의 불행을 이용해 축재하는데 급급했던 매국노였습니다. 자기 동족들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로마 정부도 빈틈없이 속여가며 축재했고, 탈세하려는 부자들로부터 뇌물을 챙겨 막대한 재산을 긁어 모은 불결한 짐승처럼 취급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리를 강도, 살인자와 한 종류로 여겼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세리나 죄인들을 <땅의 백성>이라 부르면서 이들과의 어떠한 교제도 금지했습니다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모든 사람이 죽어야 하는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로 인해, 그를 통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죄를 지니고 태어나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러나 사망에 이르게 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희생하게 하심으로 그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죄사함을 얻어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이 세상에 죄인이 단 한 사람만이 있을지라도, 그 죄인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희생시키는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어린양’은 바로 죄인을 두고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어린양’을 찾아 구원하기위해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어린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어린양’이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빈부귀천, 인종여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어린양’이 되어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어린양’을 찾아 구원하게 되면 즐거워하시며 심히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기원 전 8세기경,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저 큰 니느웨성으로 가서 그 성이 멸망할 것이라고 외쳐라. 그 곳 주민들의 죄악이 하늘에까지 사무쳤느니라.”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니느웨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쳤습니다.
니느웨에 대한 요나의 감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니느웨는 한 마디로 이스라엘 민족의 원수인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앗수르는 아주 포학하고 잔혹한 민족이었습니다. 남의 나라를 정복한 다음, 강제로 입을 벌려 혀를 뽑는다든가, 산 채로 사지를 토막내어 장대에 꽂아 높이 매달게 하여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한다든가, 성의 높은 곳에서 산 사람을 내던져 처참하게 죽도록 한다든가, 코나 귀를 잘라내어 천천히 타는 불위에 태우기도 하고, 산채로 껍질을 벗기기도 하며, 머리를 잘라 내어 누가 더 높이 쌓을 수 있는가 피라미드 경기를 시키기도 했었습니다. 요나는 이러한 앗수르의 잔혹한 행위에 대해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그의 가슴속에는 앗수르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차서 자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의 생각에 앗수르는 반드시 멸망당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정의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렇게 니느웨에 대한 원망과 증오에 불타는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너는 그들에게 가서 회개하고 구원받으라고 전하라!”?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시 앗수르 제국은 국력이 일시적으로 약해진 상황이었습니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연거푸 두 차례에 걸쳐(B.C.765과 B.C.763년) 발생한 전국적인 전염병으로 인해, 나라가 멸망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 가운데 왕과 백성들의 마음이 극도로 약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마음이 몹시도 가난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니느웨 백성들의 마음이 가난해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선지자 요나로 하여금 니느웨에 가서 구원의 복음, 곧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40일이 지나 무너지리라.”는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 백성을 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가난해졌을 때 복음을 전하여 구원코자 하셨던 것입니다.
요나는 그곳에 가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썩 내키지 않아서 하나님의 낯을 피해 다시스로 도피행각을 벌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니느웨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스로 가는 배밑 창에 숨어들은 요나를 끄집어내어 큰 물고기 배에 담아 선교지 니느웨 해변에 토해 쏟아냈습니다. 한 마디로 요나를 강제 연행하여 선교의 사명을 수행토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민족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요나는, 니느웨 백성에 대한 사랑보다는 오히려 증오심을 가지고 어찌할 수 없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민족주의자 요나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복음을 전할 자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잘못된 민족주의의 교만을 깨우치고 니느웨 백성 대한 절박하고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억지로 일지라도 요나를 니느웨에 강제로 보내신 것입니다.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전혀 기대하지 않으면서 요나는 겨우 하룻길을 다니며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멸망당하리라”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나 뜻밖의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요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니느웨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왕에게까지 이르게 되어 왕은 니느웨 전 지역에 걸쳐 사람이나 짐승이든 막론하고 모두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힘써 하나님께 회개하며 부르짖으라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금식하며 부르짖는 회개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켜 니느웨를 멸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두 차레 걸쳐 니느웨 전역에 내린 역병으로 마음이 가난해진 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전혀 사랑이 담기지 아니한 요나의 성의없는 복음 전도에도 회개와 개혁의 변화되는 역사속에 구원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과연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복음을 전하는 자가 사랑이 전혀 없어도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결국 회개와 개혁을 가져오고 구원의 축복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요나와 같이 마음에 전혀 사랑이 담기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복음을 전하게 되면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그들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시고, 여러분의 형편이 어떠하든 때를 얻든 못 얻든 사도 바울처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는 자세로 복음을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니느웨처럼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마음을 가난하게 만든 예비된 사람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병이 들거나 사업에 실패하거나 가난해져서 니느웨 사람들처럼 마음이 가난해진 사람들이 어찌 하나 둘이겠습니까? 죄악의 도탄에 빠져 괴로워하며 헤어나오려고 몸부림치는 인생들이 어찌 없겠습니까? 복음 전하는 내게 하나님의 사랑이 없고 능력이 없을지라도 “회개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40일이 지나 멸망당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속에 니느웨 백성들을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그들의 가난한 마음을 회개시킬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고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가난해진 인간의 마음을 찾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니느웨 성이 아무리 악독한 죄악이 가득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믿고 회개하여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이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전합니다. (겔33:11)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하나님 앞에 니느웨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어린양’이었습니다. 이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어린양’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요나를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처럼 길 잃어버린 양과 같은 죄인 하나를 구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인이란 한 마디로 길을 잃어버린 사람을 말합니다. 양이 목자 곁에 있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린 상태, 즉 목자가 되신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바로 죄라 하는 것입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있는 상태가 바로 길 잃은 양의 모습이며 죄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도둑질, 살인 강도, 간음 등의 죄를 지었다는 것을 문제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근본적인 관심은 인간이 “길을 잃었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도둑질, 간음, 살인, 강도 등의 죄나, 마음으로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이나 다 같은 죄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느냐, 무슨 죄를 지었느냐 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네가 전과 몇 범이냐? 소위 별이 몇 개냐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인간은 모두 전과자입니다. 모두가 다 흉악범들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가 길을 잃어서 벌어지는 것들이기 때문에 오직 길을 잃은 양을 찾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죄인을 정죄하고 세상을 정죄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예수의 손발이 되어 죄인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식탁을 나누며 그럴 수밖에 없었던 형편과 처지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얼싸 안고 용서와 사랑을 베푸는 곳입니다. 교회는 길을 잃어버린 양을 찾아가서 생명을 구원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을 끝까지 찾으십니다. 진정으로 참 목자라면 그 목자는 자신의 양무리 중의 어떠한 양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소흘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 양이 병들었건 절름발이건 간에 모두를 정성스럽게 돌봅니다.
병든 양이 있다면 그 양이 나을 수 있도록 더욱 애정과 관심을 갖고 치료할 것입니다. 만일 양 가운데 잃어버린 양이 있다면 그는 그 양을 찾기까지 밤새도록 온 들녘을 찾아 헤매일 것입니다. (요10:11)에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목자이시며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분은 목자 되신 심정으로 양같은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시며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시23편).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며 보호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길을 잃어 갈 길 몰라 헤매일 때 황량한 들녘, 깊은 계곡 그곳이 어디든지 단숨에 찾아 나서십니다.
에수님은 길 잃은 우리를 찾되 중도에 포기하시지 않고 끝까지 찾으십니다. 우리를 찾아내어 다시 잃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너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길 잃은 양을 찾아 구원하는 일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목자 되신 예수님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용서와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에수님은 용서와 사랑으로 길 잃은 양을 찾아 따뜻한 가슴으로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고전3:6-8)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하나님 말씀의 씨를 뿌리고 물을 줄지라도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분,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구원의 능력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사랑으로 가까이 다가갈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찾아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시기 바랍니다. 백석교회 설립34주년 총동원 전도주일 10월30일 주일에 한사람씩 잃은 양 초청 주일 빈자리을 채웁시다 하나님 사랑의 마음과 소원을 가슴에 담고 구원의 능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여 니느웨 성과 같은 나라 백성을 구원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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