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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도        백석교회  이승남목사 

마 7:7-8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100년을 살 것처럼 일을 하고, 내일 죽을 것처럼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늘 하는 일은 미룰지라도 기도는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의 원동력이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기도중심의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도 먼저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12제자를 택하시기 전에도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5병2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도 산속으로 가셔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마다 조용한 곳을 찾아 산이나 들판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에 대해 히브리서 5장 7절에 기록하기를“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흐르는 땀방울에 피가 섞여 흐르기까지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 에서도 기도하시면서 운명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삶은 기도로 시작하셨고, 기도로 기도로 마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이신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본 받아야할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공급하는 원동력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내려오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끊임없이 기도하시므로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우선 예수님의 기도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기도는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을 이기게 하는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본문인 마태복음 7장 7절~8절에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기를“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하셨습니다.

 

 

 

기도는 기적의 통로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24절 말씀에“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의 기도는 신비로운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9장 2절~3절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관심은 집중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기적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얍복강가에서 생명 걸고 기도하던 야곱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셔서 자신을 죽이고자 찾아오는 형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자식 없는 서러움을 견디지 못해 울부짖으며 기도하던 한나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그의 소원을 들어 사무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병든 자식의 건강을 위해 애걸하듯 기도하던 수로보니게 여인의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그의 소원을 이루어주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눈길이 머뭅니다. 기도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어린 자녀가 모든 것을 부모에게 고해야 하듯, 우리는 우리의 모든 처지를 하나님 앞에 기도로써 고해야 합니다.

 

개혁자 루터는“항상 기도에 힘쓰라고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기도가 교회와 세계를 지탱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는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일본의 성자 가가와 도요히꼬는 말하기를“신앙세계에 있어서 큰 일한 사람들은 모두가 기도의 사람이었고, 큰일을 위한 기도일수록 응답을 늦게 받은 것을 우리는 교회사에서나 신앙인들을 통하여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최대의 고아원을 창설한 이시이 쥬지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시이 쥬지가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은 고아원의 본관에는 그가 매일 정좌하여 기도하기 위한 돗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돗자리에는 깊이가 무릎 모양만큼 파져 기도한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큰 나무는 하루에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과 한 가지로 큰 응답도 하루에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응답은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권면하시기를“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 4:2)하셨습니다. 이 험난한 세상을 이기기 위해 우리도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는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도는 시험을 이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자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흐르는 땀방울에 피가 섞여 나올 만큼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육신이 약하여 잠을 자고 있음을 아시면서도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이 약하여 피곤할지라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시험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서 시험이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세력인 로마 군인들과 타락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 인한 위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방해하는 악한 세력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어려움을 말합니다. 고난을 말합니다. 이 고난 많은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길이 곧 기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태복음 26:40)라고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7절에 말씀하시기를“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하셨습니다.

 

본문에 말씀하시기를“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태복음 7:7-8)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특징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춘 기도였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눈앞에 두시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육체를 지니신 분이시므로 그 십자가가 지기 싫으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시기를“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즉시 그 말씀을 고쳐서 말씀하시기를“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신 순간이었습니다. 살고 죽는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야고보서 4장 3절에 말씀하시기를“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하셨습니다. 육신의 만족을 위한 욕심이나, 자신의 명예나, 세상의 열락을 위해 구하는 기도에는 답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이 맞춰진 기도에 하나님은 기쁘게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 마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 기도해야 합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들이 기도를 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9절에 말씀하시기를“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하셨습니다. 인간이 사자처럼 울부짖는 마귀를 무엇으로 대적하겠습니까? 단 한 가지 방법은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2편 8저에“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녀에게 한없는 축복을 주시고 그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오직 기도만이 승리의 길입니다. 열방에 우뚝 서는 길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본문에 말씀하시기를“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태복음 7:7-8)하셨습니다. 힘써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험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성일 : 15-08-0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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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백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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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꿈꾸는 대한민국

마가복음 1: 14-20

 

 

 

오늘 오후3시에는 우리민족 통일을 위한 기도회가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있습니다 주일밤 찬양예배는 시청앞 오후3시예배로 드립니다

1945년 8월 15일 은 일본 신민지(36년)에서 해방 되었습니다

8월15일 광복70주기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칼. 총을 무서워하지 않고 독립을 위해 생명 바친 애국자을 생각해 봅니다 민족이 힘이 있어서 독립이 된 것이 아니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저 일본이 항복하였기에 일본신민지 노예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오늘날 광복의 기쁨을 참여한 사람은 국민 10명중 1명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1950년 6월25일 (65주기) (3년)북한의 남침으로 38선(휴전선)이 있으며 전쟁 진행 중에 잠시 시는 상태가 휴전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민족은 기도해야합니다 다시는 피 흘리는 전쟁이 없어야 합니다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마치신 후, 세례 요한이 감옥에 투옥되자, 예수님께서는 드디어 갈릴리에서 공식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활동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첫 연설을 하셨습니다.

15절을 읽어 봅시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일반적으로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이 구절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예수님의 말씀은 명백히 ‘새로운 나라’가 시작된다는 의미였습니다. 로마 황제가 아닌, ‘하나님께서 왕이신 나라’가 시작된다는 뜻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을 반대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환호하며 좋아했겠지만, 로마제국에서 이득을 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또한 당장 반역죄라는 무거운 죄명을 씌워 처벌할 수 있는 사안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선언하셨습니다. 로마제국을 무너뜨릴 ‘하나님의 나라’의 군대가 모든 공격준비를 마치고 곧 밀려들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이 말은 ‘곧 새로운 나라가 열린다’는 뜻이고, 정치적으로 표현하자면, 곧 ‘정권이 바뀐다’ 또는 ‘나라의 왕이 바뀐다’는 뜻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회개’의 원어적인 뜻은 ‘마음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왕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마음을 바꾼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회개’는 단순히 ‘제가 나쁜 일을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도의 ‘유감 표명’이 아닙니다. ‘새로운 왕을 진심으로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왕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왕은 당연히 하나님 자신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회개’는 단순히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기 인생의 왕을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바로 ‘자신’이 자신의 삶의 왕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려고 노력합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내 인생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인생의 목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이루는 것’으로 바뀝니다. 나의 삶도 ‘내가 계획하고 앞서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나라는 자신의 삶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바꾼 사람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될 자격은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맞아들인 자에게 주어집니다. 세상이 어려워질 때면, 사람들은 ‘새로운 나라’를 꿈꾸고 기대합니다. 자신들도 행복하게 잘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람들은 ‘혁명’이나 ‘전쟁’을 통해 세상을 뒤엎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능력 있는 지도자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우리나라가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첨단기술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새로운 나라’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변화와 발전은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노력과 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이 왕이 되는 나라’에는 ‘완전한 행복’이란 없습니다. 모두 불완전한 행복일 뿐입니다. 만일 ‘인간의 노력과 능력’으로 ‘완전한 행복의 나라’를 만들 수 있다면, 오래 전에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순은 우리가 노력하고 애쓴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길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 수는 없습니다.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나라는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변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주인 행세를 하던 우리 자신을 비롯하여, 우리를 소처럼 끌고 다니던 모든 덧없는 욕심을 버려야 며. 하나님을 우리 삶의 왕으로 겸손히 맞아 들여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갈릴리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다음으로 무엇을 하셨나요?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을 따를 사람들’을 부르기 시작하셨습니다. 공개적으로 모집광고를 낸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을 따를 사람들’을 고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택하셨어야 할 사람들은 지식이 풍부하고 총명한 사람, 출중하거나 조직 관리에 능한 사람, 풍부한 자금력이나 인맥의 사람 등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상 밖의 엉뚱한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4명을 선택하셨는데,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호숫가의 어부들이었고, 각각 2명씩 형제들이었습니다. 갈릴리의 어부들을, 학식, 가문, 재산 등, 어느 조건에서 뛰어난 인재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선택하신 반응도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그물과 배, 생계수단을 모두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아버지까지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17절을 다시 봅시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물고기 잡이가 생업인 갈릴리의 어부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분명히 ‘사람을 모아 들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계셨으므로, 예수님께서 불러 모으실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갈릴리 어부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그 백성들을 불러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안은 갈릴리 어부들의 마음을 뒤흔들었습니다. 자신들의 인생에서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물고기 잡이’는 그 갈릴리 어부들에게 ‘먹고 살 수 있는 생계수단’은 될지언정, 자신들이 삶의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살기 위해’ 그 일을 하는 것일 뿐, 그 일이 ‘하고 싶어서 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먹고 사는 것’을 목표로 산다면, 그 인생은 동물의 삶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람은 먹고 사는 것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지닌 일을 해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가치’있는 삶을 사는 살아야합니다 밥 이상의 가치와 아름다움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가난한 나라들을 돕다 보면 특이한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기본적인 식량이 공급되고 나면, 사람들은 돈으로 식량을 더 사기보다는 다양한 문화생활에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영국의 ‘로이터 통신’에 자료에 북한의 휴대전화 이용자 수가 북한 전체 인구의 4%에 해당하는 10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2011년) 북한의 1인 당 국민총소득은 1,074달러입니다.

한 달에 약90달러, 즉 10만 원 정도 버는 꼴입니다. 반면에 북한의 휴대폰 단말기 가격은 30만 원 이상이고, 통화요금은 1분에 약 1,200원이며, 북한 휴대폰 이용자들의 월평균요금은 약 16,000원 정도입니다. 북한 주민들의 소득과 비교할 때, 휴대폰은 분명히 ‘불필요한 사치품’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휴대전화 이용자들의 수는 날마다 급증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현상은 사람들이 아무리 배고파도 ‘문화생활을 즐기며 사람답게 살고 싶은 욕망’, 즉 ‘밥 이상의 가치’를 찾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현대 한국교회가 왜 부흥과 성장은커녕, 뒷걸음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밥 이상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교회의 강단들을 통해 쉴 새 없이 선포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는 삶은 ‘먹고 사는 데 급급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성공과 번영 너머에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게 ‘진정 목숨 걸어야 할, 이상의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로 선택하신 갈릴리의 어부들에게, “나를 따라오라”(마가복음 1:1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갈릴리의 어부들은 자신들의 ‘그물과 배’, 생계수단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사람을 낚기 위하여’ 아무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가는 데 오히려 큰 짐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하여, 자신들의 기존의 생계수단을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제쳐두고 자기 스스로가 ‘인생의 왕’이 되어 살던 모습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삶의 왕으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마 4: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배와 그물’을 버린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주십니다.

백석교회 교우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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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마가복음 1: 14-20
설교자 이승남목사
설교일자 2015-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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